1990년대 몇몇 군부대 신병교육대 식당에선 신병들이 밥을 먹기 전 ‘정량확인 ○○○’이라고 외친 후 배식을 받는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미리 식판에 담겨진 일종의 권장 식사량을 눈으로 확인한 후 자신이 몇 번째 인원인지를 배식을 담당하는 동료 신병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병은 잠시뿐이지만 더 먹고 싶은 욕망을 자제하고, 배식 담당자들은 인원수를 헤아려 배식량을 조절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군대 특유의 단순하지만 인간적인 분위기가 묻어나는 ‘데이터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0여년 전 까까머리에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기록하고 공유했던 그들이 지금은 세월의 변화, IT의 발전에 따라 디지털 방식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기록한다. 핏비트(Fitbit), 조본(Jawbone) 등의 기업에서 출시한 헬스케어 웨어러블 기기를 구입해 걸음 수, 심박 수, 섭취한 칼로리, 맥박, 몸무게 등을 매일 측정한다. 과거에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건강과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상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는 이른바 ‘수치화된 자아(Quantified Self)’로 바뀐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자신의 건강 데이터를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도 하고, 선물용으로 기기를 구매하기도 한다. 취미, 관심사 위주의 블로깅에 빗대 수치화된 자아들의 다소 유별나 보이는 이런 행동들은 ‘라이프로깅(Lifelogging)’이라 불리기도 한다.
다보스포럼으로 잘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은 최근 발표한 ‘10대 뜨는 기술(Top 10 Emerging Technologies)’ 중의 하나로 수치화된 자아를 선정한 바 있으며 포브스는 지난해를 ‘디지털 헬스의 해’라고 명명하면서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수치화된 자아를 꼽은 바 있다.
이처럼 사람들이 의사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의 몸 상태를 기록, 공유하는 것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건강상태를 분석, 예측할 수 있고 나아가 삶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수치화된 자아가 ‘u헬스케어’라는 익숙한 용어 대신 ‘디지털 헬스’라는 새로운 조합과 직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트렌드의 핵심은 단순히 질병이 있다, 없다 또는 몸 상태가 좋다, 나쁘다는 ‘정성적’인 결론이 아니라 ‘정량적’이고 ‘계량화’된 데이터가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특히 계량화된 데이터는 심근경색 등으로 대표되는 돌연사의 원인 질병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심근경색 징후가 있다, 없다는 정보만 가지고 이를 일으키는 무리한 운동이나 스트레스를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을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존 현장검사용 심근경색용 체외진단기기는 병의 발생 가능 여부만을 판단하는 정성적 분석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제대로 된 라이프로깅과 이를 통한 삶의 변화에는 객관적 데이터가 필수다. 향후 원격의료와 접목되면 의료목적으로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동의한 환자들의 정보를 토대로 심근경색 연구 환경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수치화된 자아가 생성, 수집, 제공한 데이터가 자신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 그리고 사회전체의 모습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촉매제가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개인정보 유출 등 몇 가지 부작용만 해결된다면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빅데이터, 공공데이터와 더불어 수치화된 자아의 데이터 또한 크게 남을 이롭게 하는 ‘대이타(大利他)’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이다.
채찬영 디지탈옵틱 대표 admin@digitaloptic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