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이 풍력 사업 속도 조절을 시작했다. 국내시장 성장성이 의문시되고 외국 기업과 경쟁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으로 사업 축소를 위한 수순이 아니냐는 관측도 따른다.
삼성중공업은 서남해 해상풍력사업에 연내 참여가 어렵다는 의사를 최근 사업주체인 한국해상풍력에 전달했다. 삼성중공업은 당초 이 사업에 자체 개발한 세계 최대 7㎿급 풍력발전기 7기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한국해상풍력과 실증단계 사업 진행 계약을 맺기로 했지만 최근 참여 의사를 철회했다. 삼성중공업은 또 지난 2월부터 풍력발전기 영업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중공업 행보는 풍력사업 축소를 위한 단계적 조치라는 해석이다. 실제로 영업 중단시기가 삼성중공업이 경영진단에 들어간 시기와 맞물리면서 이 관측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은 시나리오별 조직개편 방안을 상정해두고 풍력사업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풍력발전기 제조를 중단하고 R&D만 진행하거나 사업 전체를 대폭 축소하는 등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중공업이 육상풍력사업은 포기하고 해상풍력발전기 개발에 주력하거나 유력한 인수주체가 나타날 경우 매각까지 추진할 수 있다고 해석했다. 풍력사업 확대를 위해 서울로 올린 전담부서를 다시 거제조선소로 이동시킨 것도 구조조정을 위한 절차로 이해하는 시선이 많다. 7㎿ 풍력발전기 실증 사업에 성패에 따라 사업 구조를 조정할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삼성중공업은 세계 최대 7㎿급 풍력발전기를 개발해 스코틀랜드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그동안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내년까지 실증을 추진해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하면 7㎿ 풍력발전기를 주력상품으로 해상풍력시장을 공략할 가능성이 크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삼성중공업 전체 경영진단이 이뤄졌고 풍력사업부뿐만 아니라 사업 전체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며 “구체적인 결정은 내려진 바 없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의 풍력사업 구조 조정설이 설득력을 얻는 것은 사업 여건이 크게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풍력발전기 제조 기업은 국내 실적 확보와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년째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서 풍력사업이 사실상 애물단지로 전락했다는 평가가 안팎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내 기업 실적을 살펴보면 현대중공업 44기, 삼성중공업 36기, 유니슨 29기, 두산중공업 25기, 효성이 9기, 대우조선해양 2기에 불과하다. 통상 연간 30기 이상을 수주해야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업계는 추산한다.
풍력발전기 개발 전문기업 유니슨은 지난 2012년 14억원 영업 손실을 시작으로 올해 1분기까지 영업이익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두산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대기업도 풍력부문에서 영업이익을 거의 올리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이 풍력사업을 본격 확대한 것은 지난 2008년 불었던 저탄소녹색성장 바람과 궤를 같이한다. 조선기업은 시장 정체에 대비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풍력사업을 선택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미국 드윈드를 5000만달러에, STX도 네덜란드 하라코산 유럽을 인수 하는 등 사업을 본격 확대했다. 하지만 국내 보급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일이 꼬였다. 현재 풍력사업은 50여개 사업, 설치용량 기준 1.8GW가 인허가에 발목이 잡혀있다. 풍력사업에 적합한 지역이 대다수 산지여서 인허가를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관련 규제 개선에 나섰지만 일부 사업만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측이다.
해외 시장 진출은 더욱 힘들어졌다. 풍력발전기 효율, 내구성 등 성능을 검증받아야 하지만 국내 실적이 많지 않아 해외 진출이 힘든 상황이다. 베스타스, 지멘스와 자국 실적을 바탕으로 가격 경쟁력 확보한 중국 기업과의 경쟁도 점차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대안으로 해상풍력사업이 거론되지만 사업이 추진되기까지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풍력발전기 제조기업 2011년-2013년 수주실적>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