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삼성은 3일 전격적으로 삼성에버랜드 상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입원와중에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더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달 삼성SDS 상장 계획 발표에 이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삼성에버랜드까지 상장 계획을 밝혔다. 사실상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마지막 수순’에 돌입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재용 체제 강화=이 부회장은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중심에 있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했다. 그는 삼성SDS 지분 11.25%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삼성에버랜드 지분도 25.10%를 확보해 최대 주주다.
하지만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은 성격이 조금 다르다. 삼성SDS는 그룹 지배구조 말단에 위치한 회사다. 상장 후 이 부회장은 이 지분 매각을 통해 우선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에 삼성에버랜드는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이를 통해 그룹 계열사 전반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 부회장은 에버랜드 최대주주 자격으로 특유의 순환출자 고리를 활용해 그룹 전반의 지배력은 이미 확보한 상태다.
삼성에버랜드 상장은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이외에 현금 확보 수단을 제공한다. SDS와 에버랜드가 상장할 경우, 이 부회장은 3조원 가까운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자금은 향후 이 부회장이 필요한 계열사 지분을 늘리거나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
삼성에버랜드 상장은 이 부회장이 향후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면서 선택할 카드의 범위를 확대시켜준 셈이다.
◇지주회사 전환도 임박?=증권가에서는 향후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삼성그룹은 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해야 한다. 가장 큰 문제가 에버랜드와 삼성전자의 지분 구조다. 에버랜드는 삼성전자에 직접 주주가 아니다. 에버랜드는 삼성생명의 최대주주 역할을 하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을 지배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그룹 핵심 회사인 삼성전자 지분을 단 0.57%만 보유한 상태다.
삼성에버랜드를 통해 삼성전자에 대한 실효적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삼성에버랜드를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 삼성전자를 삼성전자홀딩스와 사업자회사로 분할한 뒤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홀딩스를 합병해 지주회사를 만드는 안도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까지 홀딩스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에버랜드-삼성전자-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 초대형 지주회사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언급되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는 추후 3세 경영인의 계열분리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아=이 부회장의 삼성 경영권 승계작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관측이 많다. 여전히 난제는 많다. 이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전자 지분은 미미하다. 실질적 지주회사인 에버랜드를 통해 계열사를 장악하는 구조지만 최근 통과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과 중간금융지주사 제도 등은 삼성의 순환출자 구조에 변화를 요구한다.
이 부회장이 금융부문을 총괄하기 위해서는 삼성생명의 지주회사 전환이 필요하다. 하지만 최근 법안 개정으로 비은행지주사는 자회사로 비금융사 지분을 갖지 못하도록 했다. 삼성생명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구도가 깨질 수 있다는 의미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7.6%다. 이를 시장에 매각할 경우 경영권이 약화될 수 있고, 다른 계열사는 16조원에 달하는 이 지분을 인수할 여력이 없다. 업계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자사주 매입 형태로 삼성생명의 지분을 인수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삼성생명을 중간지주회사로 만들기 위해서는 ‘중간금융지주사제도’ 법제화가 필요하다. 정부는 인수합병 활성화 차원에서 중간금융지주사를 둘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금산 분리 원칙’을 훼손하고 삼성그룹에만 특혜라는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법제화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초일류 기업’ 삼성그룹을 승계할 능력을 갖췄느냐는 논란도 여전하다. ‘e삼성 실패’는 여전히 이 부회장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다. 부회장까지 초고속 승진을 해왔지만 정작 뚜렷한 사업부문을 맡아 성과를 보여준 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부담 요인이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