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전력수급관리 `이상 무`]<4>한국전기안전공사

여름이다. 무더위로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계절이다. 전기안전 사고 발생도 덩달아 늘어난다. 실제로 해마다 발생하는 화재 사고 상당 부문은 전기화재다. 지난해 전체 화재사고 4만932건 중 8889건(21.7%)이 그렇다. 대부분 노후 전선의 합선과 누전·접촉 불량 등이 원인이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이태혁(가명) 씨네 집의 낡은 형광등을 교체하고 있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이태혁(가명) 씨네 집의 낡은 형광등을 교체하고 있다.

전력공급은 발전회사, 수요관리는 한전, 수요 예측과 공급 조절은 거래소 담당이라면 안전한 사용은 한국전기안전공사 몫이다. 전기안전공사는 이를 위해 긴급출동고충처리 ‘전기안전119’와 전기안전보안관을 24시간 운영 중이다. 쪽방촌을 위한 시설개보수사업도 안전공사가 담당한다.

무더위에 앞서 한국전기안전공사의 남대문 쪽방촌 전기설비 개보수 봉사활동에 동행했다. 전기안전공사 서울지역본부 차재훈 과장과 직원 3명이 함께 했다.

남대문로 5가 619번지. 일명 남대문 쪽방촌이다. 서울역 맞은 편 서울스퀘어(옛 대우빌딩) 뒤편이다. 대도시 서울을 찾는 사람들에게 숨기려는 듯 거대한 빌딩이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다. 서울의 그늘이다. 하늘만 뚫렸다.

쪽방은 보통 3㎡ 전후의 작은 방으로 보증금 없이 월세로 운영된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쓰고 대개 방에서 휴대용 버너로 밥을 해먹는다. 동행한 김솔 서울시 남대문지역상담센터 행정팀장에게 들으니 이곳 남대문 쪽방촌에만 750명이 산다. 경찰서 뒤에 500명, 연세빌딩 뒤에 250명 정도다.

쪽방은 하루 8000원에 전기와 수도요금까지 포함됐다. 한달 살면 24만원이다.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 쪽방촌은 최후의 거주지로 불린다. 노숙과 주거의 경계지란 얘기다. 여기서도 버티기 힘들면 노숙하고 사정이 좀 나아지면 다시 들어온다.

영등포나 남대문의 쪽방촌은 원래 집창촌이었다. 집창촌이 사라지면서 더 많은 손님을 받기 위해 건물주 마음대로 방을 쪼갠 것이다. 쪽방은 소유주가 직접 관리하기도 하고, 소유주가 쪽방 주민을 고용해 관리인을 두기도 한다.

먼저 이태혁(가명) 씨네를 들렀다. 주소는 619번지로 끝난다. ‘B1’이라 쓰인 쪽문이 전부다. 안전공사 직원들은 익숙한 듯 허리를 숙여 들여간다.

반지하방이다. 왼쪽으로 간이침대가 놓여 있고 옷가지 얼마와 전기밥솥, 라면이 전부다. 가장 많은 건 약봉지다. 키가 182cm인 기자는 허리를 펼 수조차 없을 만큼 낮다. 2평 남짓이다. 신발 놓을 곳도 없는데 이곳에서는 큰 방이란다. 이태혁 씨는 가족과 떨어져 이곳에 들어온 지 벌써 4년이 됐다고 한다.

전기설비를 둘러봤다. 벽과 천정이 맞닿는 자리에 갓이 달린 구식 형광등이 노랗다 못해 갈색으로 변한 전선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천정이 약해 달 수 없기 때문이다. 콘센트나 스위치도 제 색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누전차단기 하나만 달랑 붙어 있다.

오늘 작업은 형광등과 콘센트, 스위치, 차단기, 노후 전선 교체다. 먼저 차단기를 내리고 능숙한 솜씨로 형광등을 떼어냈다. 연결된 전선도 뜯어냈다. 색바랜 콘센트와 스위치도 죄다 제거했다. 형광등만 바꿨는데도 집안이 환해졌다. 노후 전선도 바꿨으니 전기로 인한 화재 위험은 줄어들었다. 수리가 끝나니 오전 11시다. 동네가 분주하다. 무료 도시락 배달이 시작된 것이다. 이걸로 하루를 버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집을 나서자 차재훈 과장을 알아본 동네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 온다. 차 과장도 근황을 묻고 필요한 것은 없는지 살핀다. 한두 번 온 게 아닌 모양이다. 특별한 날 외에는 외부 사람의 발길이 없다 보니 우리가 온 것 자체가 이목을 끈다. 경계하는 눈빛도 있지만 대부분 반긴다. 찾아주는 것 자체를 고마워하는 느낌이다.

자리를 옮겨 김순임(가명) 씨네를 찾았다. 짧은 복도 가장 안 쪽 방이다. 수많은 쪽방 중 3호라고만 해도 다 아는 모양이다. 1m 간격으로 양쪽에 늘어선 문이 모두 한 집인 셈이다.

마침 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웠다. 가진 게 많지 않으니 문도 잠겨 있지 않다. 방에 들어서니 두 사람이 한 번에 눕기조차 힘들 정도다. 좀 전 이태혁 씨 집은 차라리 큰 집이다. 창문은 사치다.

관리인한테 얘기하고 공사를 시작했다. 오늘 작업은 형광등과 콘센트, 벽 스위치, 노후전선 교체다. 작업 중에 옆집 사는 김민철(가명) 씨가 말을 걸어왔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가끔 들러 전기안전 점검을 해주니 전기를 사용하는 데 어려움은 전혀 없다며 고마워한다.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낸다는 김 씨는 당뇨 합병증으로 두 발 모두 절반씩 잘라냈다. 하지만 걷는 데 문제없다며 미소를 지어 보인다. 김 씨네도 잠시 들러 멀티 탭을 교체해줬다. 멀티 탭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었다.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는 세면장 천정이 낡았다며 봐달라고 부탁한다. 벽지도 다 떨어져 새로 발라야 한단다. 전기뿐만 아니라 부족한 게 많은 곳이다. 소위 맥가이버가 돼야 한다.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면 새겨들었다가 담당 사회복지사에게 알려준다.

두 번째 집도 공사가 마무리됐다. 벌써 하루가 갔다. 나오는 길에 보니 쪽방 복도 대부분 두꺼비집과 공용 전등은 새 걸로 교체가 돼 있었다. 전기안전공사가 남몰래 도운 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500가구 모두 혜택을 받지는 못했다. 차 과장은 “쪽방촌은 노후하거나 불량인 전기설비로 전기사고 위험에 늘 노출돼 있는데다 건축물 구조상 화재가 발생하면 번지는 속도는 빠르지만 대피는 어려워 인명피해 우려가 높다”며 “쪽방촌 전기설비 개보수로 전기만큼은 여느 서울시민처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