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삼성발 제조업 위기②]잇따른 중국행…위기 진앙지로 둔갑

스마트폰·디스플레이마저 세계시장서 中 기세에 밀려

대한민국 경제의 주력인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산업까지 최근 중국에 밀려가는 형국이다. 중국은 삼성발 제조업 위기의 주된 원인이다. 저렴한 인건비를 찾아 갔던 생산기지 중국은 어느 새 우리 핵심 제조업을 겨누는 경쟁자로 성장했다. 막대한 정부 지원을 동력 삼아 중국 제조업이 첨단 산업까지 발을 뻗어가는 동안, 우리 제조업은 갈 길을 잃어버린 분위기다.

[연속기획][삼성발 제조업 위기②]잇따른 중국행…위기 진앙지로 둔갑

삼성이 중국과 경쟁하는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당장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인 중국을 잡아야 한다며 중국행을 택하는 것이 그 단면이다. 삼성의 위기는 추격자 중국으로부터 시작됐음에도 최대 고객 중국을 잡아야 하고, 그 때문에 각종 기술이 전수돼 경쟁자 성장에 기여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 것이다. 삼성조차도 이후 후방산업까지 미칠 영향은 생각할 겨를조차 없는 듯 보인다. 우려는 현실이 되어 돌아왔다. 몇 년 전만해도 중국이 엄두내지 못했던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산업은 이미 추격을 넘어 경쟁하는 수준까지 올라섰다. 이제 관련 소재·부품 등 기반 산업의 기술이 전수되는 2단계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디스플레이, 중국의 거센 도전 직면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의 전체 판매량은 이미 애플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대표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화웨이·레노버·ZTE의 출하량을 합치면 아이폰 판매량에 근접한 1억3000만대에 육박한다. 여기에 고속 성장하는 샤오미·TCL과 다른 현지 제조업체들까지 포함하면 2억대가 거뜬히 넘어간다. 올 해는 중국 업체들의 성장세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된다.

디스플레이 시장 상황은 더 심각하다. 한국은 중국 업체들이 잠식해 오면서 이미 세계 시장 점유율 과반의 자리를 내줬다. 중소형 LCD 패널 시장은 중국이 세계 1위로 뛰어올랐다. 출하량 기준 한국을 앞지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2년부터다. 중소형 패널 선두도 중국 회사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중국은 디스플레이 생산 설비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세계 시장 공급과잉 우려에도 아랑곳 않는다. 스마트폰용 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판으로 사용되는 저온폴리실리콘(LTPS) 생산능력은 오는 2016년이면 중국이 세계 1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 LTPS 생산량은 일본의 재팬디스플레이(JDI)가 가장 많았다. 그러나 중국 BOE·CSOT·티안마·폭스콘까지 LTPS 투자를 단행할 예정이어서 2016년에는 순위가 뒤바뀔 전망이다. 재팬디스플레이나 LG디스플레이도 LTPS 투자에 나서고 있으나 중국의 거침없는 행보를 따라잡긴 힘들다.

8세대(2200×2500㎜) 라인 이상에서 주로 생산되는 대면적 LCD 패널 시장도 중국이 추월할 날이 머지 않았다. 8세대 라인 설비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곳이 중국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투자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정부의 지원과 시장이다. 정부는 은행 융자와 첨단산업 자금 지원 등의 명목으로 설비 투자를 지원한다. 실제 기업이 투자하는 금액은 전체 소요 비용 중 20%에도 못미친다. 더욱이 관세까지 올리면서 중국 외 생산 제품들이 발 디딜 틈이 없다.

과거 한국이 양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올라섰으나 이제는 그 자리를 중국이 노리고 있다. 왕둥성 BOE 회장은 최근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에서 향후 세계 1위를 향한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중국 도전에 후방산업까지 영향

스마트폰과 디스플레이 산업이 타격을 입으면서 그 영향은 후방산업으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은 디스플레이 산업에 이어 핵심 소재·부품 키우기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도 중국산 부품과 소재를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분위기다. 최근 BOE가 현지 유리 업체의 기판 유리 공급을 승인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중국 부품 업체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오필름 등 중국 터치스크린패널(TSP) 업체들의 성장도 이에 기반한다. 이렇게 성장한 기업들은 다시 한국을 공략한다.

장비 산업도 마찬가지다. 국내 장비 업체 일부는 중국 시장 매출 비중이 80%까지 올라갔다. 중국 고객을 잡지 못하면 생존을 염려할 지경에 이르렀다. 문제는 중국에 장비 산업이 자리 잡을 때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은 중국의 생산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 한국이나 일본 장비 기업들이 활약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장비 기술까지 전수된다면 국내 기업들은 활로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시스템반도체는 중국이 이미 추월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는 삼성전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소기업뿐이다. 반면 중국은 이미 1조원을 넘어선 팹리스(반도체설계전문) 회사들이 잇따라 나타났다. 정부가 공정 비용을 비롯한 제반 환경을 지원해 창업이 줄을 이었다. 환경이 조성되자 해외 유학파나 실리콘밸리 출신들이 대거 중국으로 돌아가 자국의 설계 기술력을 키웠다. 국내 중소 팹리스들이 중국 팹리스에 밀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분야를 따져 봐도 국내 시스템반도체 전문업체들은 설 자리가 없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는 퀄컴·삼성전자 등 극소수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프로세서 설계 능력을 믿고 중국에 진출했던 멀티미디어 프로세서 업체들은 대부분 중국 팹리스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설계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아날로그반도체나 전력반도체, 무선 통신 칩도 중국 팹리스들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이렇게 성장한 중국 기업들은 이제 한국을 겨냥하고 있다. 스프레드트럼·올위너 등 주요 팹리스뿐 아니라 최근에는 락칩도 한국 시장 저변을 넓혀가는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시스템 반도체 업체수만 해도 한국보다 100배는 많다고 보면 된다”면서 “우리 기업들은 주력 시장을 바꾸지 않으면 생존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