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생태계 복원 시급하다]<상>1차 벤처 붐의 역사적 평가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창업활성화, 즉 제2 벤처 붐 추진의 전제조건은 1차 벤처 붐의 역사적 평가일 것이다. 2000년대 초 뜨겁게 끓어오르다 식은 1차 벤처 붐에 대한 평가는 1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엇갈린다. 한 편에서는 3만개가 넘는 벤처기업들이 성장과 고용의 유일한 대안으로 부상한 한국경제의 ‘희망’으로 보고 있으나, 다른 한 편에서는 ‘묻지마 투자’로 대표되는 ‘거품’이었다는 시각이 있다. 희망인지 거품인지에 따라 2차 벤처 붐 추진 정책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벤처생태계를 복원하고 창업정책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1차 벤처 붐에 대해 재조명해본다.

[벤처생태계 복원 시급하다]<상>1차 벤처 붐의 역사적 평가

모든 역사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성과가 빛이라면 손실은 그림자일 것이다. 우선 벤처가 이룩한 경제적 성과를 살펴보자. 중소기업청에 의하면 2012년 기준 벤처 확인 기업 2만8135개의 매출은 180조원, 1000억 벤처 416개의 매출은 90조원으로 합계 270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벤처 졸업기업 추정 매출 35조원를 더하면 300조원을 넘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들의 성장률은 각각 15.8%와 9.1%에 달하고 있어 국가경제 성장 기여에 1.1%를 차지하고 있다. 확실한 사실은 벤처기업은 이제 대기업과 더불어 국가의 성장을 이끄는 쌍두마차는 물론이고 고용증가의 견인차가 되고 있다.

그림자를 살펴보자. 1997년 IMF 위기가 대기업의 위기였다면 2001년 세계 IT 버블의 붕괴는 벤처기업들의 위기였다. 정부는 위기극복을 위해 대기업과 벤처에 각각 168조원과 2조20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이 중 대기업으로부터는 62.9%인 106조원을, 벤처기업으로부터는 72.7%인 1조6000억원을 회수했다. 결국 회수하지 못하고 남은 공적자금은 62조원(대기업)과 6000억원(벤처)으로 이는 벤처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대기업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과 그림자를 통합한 결과는 6000억원. 벤처가 일으킨 300조원 매출에 40% 부가가치를 감안하면 매년 벤처는 120조원에 달하는 국민총생산(GDP) 기여를 창출한다. 결론은 단순하다. 빛에 비해 그림자는 너무나도 미미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벤처에 과다한 자금이 투입됐고 ‘벤처는 거품’이라는 착시현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러한 오해가 걷히지 않고서는 올바른 제2의 벤처 붐 정책이 입안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벤처의 모럴 해저드도 단골 메뉴로 논쟁에 오른다. 이용호, 정현준, 진승현 게이트로 대표되는 벤처 모럴 해저드 사건의 본질은 기업사냥꾼들이 벤처기업을 사냥한 것인데, 본말이 전도돼 벤처인들의 것으로 둔갑했다. 마치 아파트에 강도가 들었는데, 경찰이 아파트 주민에게 책임을 묻는 격이다.

기업사냥꾼 문제는 벤처인이 아니라 금감원 등 사법 당국의 책임사항이라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 것은 벤처기업에는 노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작은 기업이어서 그렇다고 주장하나 매출 1000억 벤처를 일반 기업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개방과 공유의 벤처문화가 노조의 필요성을 없앤 것이라 보는 것이 좀더 타당한 해석일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제2 벤처 붐을 위해 이스라엘 등에서 많은 정책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반면에 2000년대 초 당시 한국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세계 최고의 벤처생태계를 이룩했다. 이원재 요즈마그룹 한국지사장은 지난해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믿기 어렵겠지만 10여년 전만해도 이스라엘은 한국의 벤처 환경을 부러워했다. 당시 한국에는 1만개가 넘는 벤처기업들이 쏟아져 나왔지 않나”라고 밝혔다. 당시 이스라엘 벤처기업 수는 1000개에 불과한 반면에 한국에서는 연간 3000개가 넘는 벤처 창업이 일어났고 벤처인들은 신랑감 1위로 손꼽혔다.

세계 최초의 ‘벤처기업특별법’과 금융신시장인 ‘코스닥’이 1차 벤처 붐을 끌어냈다. 여기에 실험실 창업, 창업보육센터, 테크노파크, 벤처빌딩으로 연결된 벤처클러스터 정책이 뒷힘이 됐다. 개방혁신을 위한 기술거래소도 만들어졌다.

이러한 제도들은 단순히 타국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라 세계적 흐름에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해 우리 스스로가 고심해 만든 세계를 앞서 간 정책들이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 벤처기업협회 초대회장 mhlees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