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우리나라는 홍콩, 대만과 함께 ‘섬유수출 빅3’로 불렸다.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경쟁력을 확보한 우리나라는 1960년대 본격적으로 수출을 추진,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대외여건 변화와 임금상승, 인력난 등으로 성장세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섬유산업은 진화를 거듭하며 제2의 전성기를 눈앞에 뒀다. 정보통신기술(ICT)과 패션을 융합한 ‘섬유패션산업’은 우리나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각광받고 있다. 과거 낮은 인건비를 바탕으로 양적성장을 이뤘다면 지금은 기술력과 문화 가치의 결합으로 질적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사업을 바탕으로 우리 섬유패션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봤다.
◇섬유수출 강국의 영광, 다시 한 번
1970년대 세계 3대 섬유수출국으로 불렸던 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 8위까지 떨어졌다. 2000년 5%였던 세계시장점유율은 2012년 2%로 낮아졌다. 우리 수출은 꾸준히 늘었지만 값싼 인건비를 무기로 중국이 세계 시장을 점령하며 입지가 줄어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섬유패션산업이 주요 수출·고용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사양산업이라는 인식 때문에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섬유패션의 고부가가치화와 수출 확대를 위한 사업을 추진했다. 대표적인 게 지난 2007년부터 계속되고 있는 ‘섬유패션스트림간협력기술개발사업’이다.
섬유스트림사업은 원료-원사-직물-염색-봉제-패션으로 이어지는 스트림 간 협력 컨소시엄을 대상으로 기술개발자금을 지원해 섬유제품의 차별화와 신공정 기술 혁신을 도모한다. 기술개발 후에도 공동생산과 마케팅 등을 협력하도록 유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촉진하고 수출과 제품 부가가치 향상을 촉진한다. 이를 통해 글로벌 중소·중견 섬유패션 기업을 육성한다는 목표다.
최근 4년 동안(2010~2013년)에만 이 사업으로 총 116개 과제가 완료됐다. 이 중 상당수가 고용, 매출은 물론이고 해외시장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호평을 받았다.
한 예로 벤텍스는 휴비스 등과 ‘쾌적기능성 아웃도어 섬유’를 공동 개발해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이 섬유를 적용한 제품은 땀을 1초만에 배출시키고 면 의류보다 10배 이상 건조가 빨라 노스페이스, 컬럼비아스포츠웨어 등으로부터 주문이 늘고 있다. 서진텍스타일이 효성 등과 공동 개발한 ‘자연감성의 초고밀도 극세사직물’은 기존 제품 대비 가격이 2배 높지만 국내외 유명 브랜드로부터 다운자켓 겉감용으로 주문이 매년 10% 이상 늘고 있다.
◇섬유패션, 첨단 산업으로의 진화
‘섬유패션산업=옷’이라는 공식은 틀렸다. 옷을 제외한 섬유패션산업의 비중은 이미 높은 수준으로, 가치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아라미드·탄소섬유와 같은 산업용 소재는 미래 국가경쟁력을 좌우할 아이템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부도 첨단섬유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탄소밸리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탄소밸리는 탄소소재 관련 원천·응용기술 개발을 통한 핵심 소재 국산화, 기술경쟁력 확보 등을 목표로 한다. 전주에서 지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991억원(국비 1087억원, 지방비 78억원, 민자 826억원)을 투입해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을 통해 탄소소재 국산화로 34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 자동차 부품시장 진출에 따른 대체시장 창출(국내 1조5000억원, 해외 11조원)이 기대된다.
경상북도는 정부와 함께 ‘첨단 메디컬 섬유소재 개발사업’을 추진 중이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000억원을 투입해 치료 및 수술용, 헬스케어 및 위생용 섬유소재를 개발한다. 메디컬 섬유소재 세계시장 규모는 82억달러(국내 시장 3조2593억원)로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이 수출보다 2배 이상 많아 무역수지적자인 상황이다.
정부는 이외에도 슈퍼소재 융합 제품 산업화 사업, 하이브리드 및 슈퍼섬유소재 전문인력 양성사업 등으로 섬유패션 산업의 첨단화를 가속화 하고 있다.
김화영 산업통상자원부 섬유세라믹과장은 “정부는 의류 부문의 지속적인 발전 토대를 만들어가는 한편 섬유산업의 패러다임이 산업용으로 변하는 흐름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펼쳐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과제는 이미지 쇄신과 고급 기술·인력 확충
업계는 섬유패션산업의 재도약을 위해 사업 환경 개선과 이미지 쇄신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열악한 작업환경, 낮은 임금, 생산인력 고령화, 사양산업이라는 인식 등으로 청년들이 관련 업계에 몰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실제로 섬유패션산업 평균임금은 조선, 자동차, 반도체 등 우리 주력산업과 비교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노동비용도 일본, 이탈리아, 미국과 비교해 한참 떨어진다.
이와 함께 섬유패션제품 고부가가치화를 위한 기술개발, 고급 인력양성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한 중국과 기술·문화 수준이 높은 일본, 이탈리아의 틈바구니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고부가가치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우수한 ICT, 독자적인 문화역량과의 융합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섬유업계 한 관계자는 “점차 개선되는 상황이지만 섬유패션산업에 대한 젊은 층의 인식은 여전히 부정적인 편”이라며 “연구개발, 인력양성과 더불어 정부가 산업 이미지 쇄신을 위한 지원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