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병석에 든 후 삼성가(家) 3세의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가 붙었다. 승계냐 세습이냐를 놓고도 말들이 많다. 갑론을박 해봐야 바뀔 건 없다.
요사이 이재용(JY) 삼성전자 부회장은 단골 술안주다. 삼성전자 승계는 정해진 수순이고, 삼성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보니 세인의 관심은 당연지사다. 주관심사는 그의 능력과 자질이다.
JY에 대해 알려진 건 거의 없다. 세간에 드러난 사례는 십수년 전 JY가 담당한 ‘e삼성’뿐이다. 그룹 차원의 지원에도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삼성테크윈의 디지털카메라 사업을 삼성전자 모바일사업부로 흡수하고도 답보상태에 있거나 드라이브를 걸었던 비메모리 사업이 부진한 사례 등은 그의 가담 정도가 불명확하니 평가기준에선 제외다. 그러해도 23년간 삼성전자에 근무하며 이렇다 할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의문부호는 여전하다. JY가 ‘마이너스의 손’이란 수식어를 떼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나 마이너스가 아닌 ‘미다스의 손’을 인정받은 분야가 있다. 재테크 분야다. JY는 20년 전 부친에게서 현금 61억원을 증여받아 상속세를 내고 남은 45억원으로 전대미문의 투자 성과를 올렸다. 그룹 계열사인 한국안전시스템(현 에스원)·삼성엔지니어링·제일기획·중앙개발(현 삼성에버랜드)·삼성전자·삼성SDS 비상장주식·전환사채·신주인수권부사채를 사서 상장 직후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자산규모를 4조원대로 키웠다. 내년에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가 상장되면 자산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어갈 수도 있다.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도 두 손 들 성과다.
그룹 내 회사 간의 내부거래도 그의 마법을 돕는다. 스마트폰용 카메라모듈·주기판 등을 공급하며 삼성전자 의존도가 56%인 삼성전기, 디스플레이를 공급하면서 의존도가 64%에 달하는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핵심 IM(IT모바일)사업부의 실적에 따라 울고 웃는다. 두 회사의 상반기 영업이익은 마이너스로 추정된다. 지난해 각각 4640억원, 2조8260억원의 이익을 냈던 회사다.
IM사업부 실적이 나빠지면 고강도의 단가 인하 압력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들의 공급가격은 삼성전자 협력사들의 단가 인하 가이드라인이 된다. 계열사·협력사가 체감하는 압박 강도만큼 삼성전자의 실적이 개선되는 게 산업계의 산술이다. 오비이락이라고 해야 할까. 삼성전기·삼성디스플레이에 JY 주식지분은 없다. 하지만 삼성전자엔 그의 지분은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 의존도가 25% 수준인 삼성SDS의 이익은 꾸준하다. 참고로 삼성그룹 의존도는 72%나 된다. 1분기에는 예년과 비슷한 1024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공교롭게도 이 회사 대주주는 JY다. 같은 삼성이라도 JY의 지분 여부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건 괴이한 우연이다. JY가 주주인 삼성에버랜드도 쏠쏠한 이익을 내고 있으니 분명 그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미다스의 손인 건 충분히 알았으니 이젠 진정한 실력을 보여 달라. JY를 술자리 안주 삼는 무지렁이를 위해서라도 능력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삼성 잘되길 기도하는 사람은 곳곳에 넘쳐난다. 나도 그 중 하나다.
최정훈 정보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