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3위 휴대폰 단말기 제조사인 팬택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위기에 놓였다. 채권단이 워크아웃 지속을 위해 이동통신사에 채권을 출자 전환할 것을 요구했으나 통신사들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팬택이 법정관리에 돌입하면 회사 규모는 더욱 움츠러들어 사실상 청산 절차를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팬택이 사라지면 국내 휴대폰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강 구도로 재편돼 지금보다 시장 경쟁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경쟁을 통한 휴대폰 기업의 기술 경쟁이 느슨해지는 한편 소비자도 제품 선택권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을 비롯한 팬택 금융권 채권단은 이동통신업계가 1800억원에 달하는 채권을 출자전환하지 않을 경우 회생절차(법정관리)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통사 채권 1800억원을 처리하지 못하고 금융권만 3000억원을 출자전환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산업은행 기업구조조정본부 관계자는 “이통사의 동참 없이 출자전환을 한다면 회사 회생에 필요한 자금으로 쓰이기보다는 이통사 보조금으로 지급될 가능성이 커 추가금만 계속 들어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 “출자전환금이 이통사의 채권을 갚는데 쓰인다면 다른 채권자와 형평성 문제가 있다”는 우려를 내비쳤다.
이동통신사는 보조금이나 팬택에 기지급된 단말기 가액 중 일부를 되돌려 받아야 하는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특히 1000억원에 가까운 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이 가장 문제다. 출자전환할 경우 당장 재무제표상 1000억원의 매출채권이 회수 불가능으로 사라진다. 또 1000억원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하게 돼 추가 출자 부담을 질 수도 있다. KT와 LG유플러스는 최대 채권자인 SK텔레콤이 버티는 이상 굳이 나서서 출자전환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출자전환 없이 워크아웃을 연장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지만 금융권은 이통사가 기존 채권을 이유로 추가구매를 꺼리고 구매를 하더라도 경쟁 제조사에 비해 보조금을 덜 지급해 결국 사정이 더욱 나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매출액 중 90% 이상이 국내 매출인데 국내 이통사가 팬택 단말기를 유통할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아직까지 이동통신사로부터 출자전환에 관한 답변을 전혀 받지 못했다”며 “이통사 참여 없이 워크아웃 연장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은행권이든 이통사든 이해관계상 더이상 추가 지원은 불가능할 가능성이 커졌다. 워크아웃을 연장하지 못하고 회생절차에 돌입할 경우 팬택은 사실상 청산절차를 밟게될 것으로 예상된다.
팬택 입장에서는 당장 워크아웃을 연장하고 정상화하는 게 급선무다. 팬택 관계자는 “월 20만대 이상 판매되면 흑자를 내는 구조로 이미 조직을 정상화했고 지난 3~5월 영업정지기간 여파로 일시 적자가 났던 것”이라며 “채권단의 대승적 결정이 있다면 자생 가능한 건 물론이고 주식 보유에 대한 배당까지 가능하다”며 이통사의 결단을 촉구했다.
팬택이 청산되면 국내 단말기 업계가 삼성전자·LG전자 양강으로 굳어지게 된다. 3사 간 견제 구도가 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팬택이 내놓았던 다양한 실험적 단말기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될 가능성도 크다. 팬택은 상대적으로 소량 양산체제를 구축해 지문인식, 동작인식, 후면버튼 기능이나 풀메탈 케이스 등을 국내에 가장 빨리 출시해왔다.
오은지기자 onz@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