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창의성에 기반을 둔 연구를 진행하는 미국 MIT 미디어랩보다 뛰어난 연구실을 만들고 싶습니다. 못할 이유 하나도 없습니다.”
촉감인터페이스 연구를 ‘범용의 경지’로 끌어 올린 경기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투명소자및 UX창의연구센터장의 바람이다.
KAIST에서 학사와 석·박사학위를 받은 경 센터장은 초지일관 촉감인터페이스 연구에만 15년을 매달린 ETRI 차세대 R&D 주자다. 드물게 30대 후반에 센터장을 달았다.
“센서나 액추에이터를 투명하고 유연하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활용처는 IT기기나 광학기기 등 다양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미래창조과학부 파이오니아사업을 통해 자동초점 조절이 가능한 렌즈같은 걸 만들기 위해 형상이 스스로 변하는 물질을 연구 중입니다.”
경 센터장이 가장 최근 내놓은 연구성과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나 로봇 인공피부 등에 적용 가능한 투명 촉각센서다.
이 촉각센서는 두께가 머리카락보다 가는 50㎛ 수준이어서 유연성이 좋고, 아무데나 쉽게 붙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바로 전엔 시촉각 융합디스플레이 모듈을 내놔 관심을 끌었다. 이 모듈은 터치스크린에 보이는 숫자를 손으로 만지면 숫자 모양이 느껴지게 하는 기술이다.
지난 2006년 ETRI에 처음 들어와 손 댄 것이 촉각펜이다. 갤럭시 노트의 스타일러스로 물리적인 힘까지 느낄 수 있는 기술이라고 보면 된다.
“당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평가받으며 주목도 끌었습니다. 외국에도 그런 펜이 없던 시절이어서 전시회 나가 시연하면 인기 가 높았죠. 하지만 상용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촉각펜 굵기가 연필 2자루 정도 됐는데, 기업들이 소형화를 요구했습니다. 예산집행 범위가 거기까지인 우리 입장선 곤란할 수밖에 없죠.”
이 촉각펜은 지금도 해외서 문의가 많이 오는 편이다. 경 센터장은 상용화를 위해선 촉각펜이나 촉각센서 모두 1~2년 정도의 추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경 센터장은 KAIST를 졸업한 뒤 ETRI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박사과정 연구아이템으로 권동수 기계공학과 교수 지도 아래 촉각마우스를 개발했는 데, 그런 연구를 국내에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았다”고 말했다.
“ETRI에서 제가 하고 싶은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에, 저는 수혜자입니다. 할 말이 없지요. 다만, 젊은 연구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줬으면 합니다. 정부에 연구원을 믿고, 차분히 기다려달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연구자가 대개 30년간 과제를 수행한다고 볼 때 그 가운데 세상을 변화시킬 기술 단 한 건만 나와도 엄청난 일을 한 것 아닌가요?”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