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회

1. 이상한 검

“나의 형님이신 왕 눌지가 아니라 왜 하필 왕자인 나, 미사흔인가?



검(劍)을 받은 미사흔은 그대로 주춤했다. 미사흔은 자신에게 검을 전달한 여인을 비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인의 입술과 볼의 연지가 숫처녀의 월경처럼 붉었다. 아마도 월경을 감추려는 수작일지 모른다.

“형이자 제왕이신 블레다님이 아니라 동생이신 왕자 아틸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저는 이 검을 품고 한 해가 지나도록 지치지 않고 달려왔습니다.”

여인의 눈동자는 각각 그 빛깔이 달랐다. 한 쪽은 회색빛이고 한 쪽은 호박색이었다. 그동안의 고달픈 정염이 넘실거렸다. 굴곡진 몸은 신라의 여인들과 전혀 다른 초원의 암내를 풍겼다. 여인의 알듯말듯한 미소가 연지산(燕支山)의 홍화처럼 아련하게 번졌다.

미사흔은 검을 소중하게 감싸고 있는 능라(綾羅)를 만져보았다. 온통 금빛깔이었다. 눈이 멀 지경이었다. 미사흔은 먼저 두터운 능라를 걷어냈다. 그러자 얇은 능라가 드러났다. 얇은 능라를 걷어내자 다시 두터운 능라였다. 이렇게 첩첩의 능라가 이 검을 지키고 있었다.

“이 능라는 세레스(seres)의 깃발입니다. 불타는 태양과 사막의 모래바람으로 부터 이 검을 보호합니다.”

드디어 마지막 남은 능라는 검을 품고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사흔은 눈을 꾸욱 감았다. 그의 심장은 곧 시작될 또 하나의 전쟁처럼 요란해졌다. 그가 힘차게 벗겨내자 검은 윤기나는 칠흑마의 갈기처럼 찬란한 빛의 갈기가 되어 방 안을 순식간에 휘감아 돌았다. 탄식이 흘렀다.

“아아.”

검은 스스로의 역사와 비밀을 견디며 이 멀고 먼 신라까지 당도한 찌르는 함성같은 전설이었다.

“이토록 벅찬 신검은 본 적이 없다.”

미사흔은 아름다움에 대한 신랄한 정색이 오히려 슬픔의 칼날이 되어 올라오자 검을 두 손으로 높이 들었다. 순간 천둥같은 말발굽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말발굽소리는 끓는 솥의 무지막지한 기름처럼 소름으로 마구 돋아났다. 그 말발굽소리의 정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화살비가 쏟아져 내렸다. 화살비는 하늘의 태양빛을 빠르게 가렸다. 일시에 날은 어두컴컴해졌다. 그래도 그 정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반항적인 전사들인 동시에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를 배출한 트라키아인들 조차 어린짐승들처럼 겁에 질려버렸다. 말발굽소리와 화살비가 먼저 도착했고 적의 정체는 도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일찍부터 무서웠다. 어디선가 비명이 짧게 부서졌다. 진짜 정체가 도착했다. 비기(秘器)는 말발굽소리도 화살비도 아닌, 바로 그였다. 순간 작고 째진 눈에 묘한 고양이 눈빛을 가진, 그의 검이 트라키아인의 머리통을 단번에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의 검에 머리통이 튼실한 열매처럼 달랑거렸다. 그의 검이 유난히 벅찼다.

“신의 징벌이야.”

“아틸라야.”

수군거림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트라키아인들은 이미 그의 이름만 들어도 굴복하고 있었다. 그였다. 아틸라였다.

글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