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화질(UHD)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일본의 꿈은 이미 8K(7680×4320)에 가 있다. 민관협력으로 4K에 이어 8K까지 세계 UHD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우리는 컨트롤타워 부재로 각 진영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상황이다.
일본에서 UHD는 국책과제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UHD TV 시연회장을 찾을 정도로 UHD 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5월에는 UHD 통합 협의체 ‘차세대 방송 추진 포럼(NexTV-F)’을 출범시키며 UHD 컨트롤타워도 만들었다. 이 단체에는 소니, 도시바, 파나소닉 등 가전사와 NHK 등 지상파 방송사, 케이블·위성방송사, NTT와 KDDI 등 통신사, 대학, 연구소 등 UHD TV와 방송에 관한 모든 단체가 모였다. 한국에서도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일본법인이 참여하고 있다.
포럼의 등장으로 일본의 UHD 산업은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포럼 산하 기술·콘텐츠·홍보위원회가 각 분야별로 해당 기업들의 활동을 기획·지원하기 때문이다. 통신사 NTT와 전자업체 NEC, 후지쯔, 미쓰비시가 UHD TV에 들어가는 차세대 코덱 HEVC(H.265)의 인코더 공동 개발에 나섰고, NHK는 전자회사들과 함께 개발한 차세대 방송기술을 매년 전시회를 열어 소개하고 있다. 올해에는 22.2채널 입체음향, 무안경 3차원(D) 등 8K 시대를 겨냥한 기술들이 대거 등장했고 그 외 지상파 방송사들은 8K 기반 양방향 방송 인터페이스를 내놓고 있다.
8K를 ‘슈퍼하이비전(SHV)’이라 부르는 일본은 이미 8K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NHK가 지난해 8K 단일주파수망(SFN)을 구현했고, 올해 1월과 2월에는 각각 지상파와 인터넷 프로토콜(IP)을 이용한 전송 실험에도 성공했다. 콘텐츠에 대한 노력도 기울이며 지난해 9월 도쿄국제영화제에서 8K 드라마가 소개됐고, 올해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9개 경기를 NHK가 직접 FIFA와 8K로 제작해 일본 주요 지역의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다. 2016년 8K 시험방송을 준비하는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맞춰 8K 본방송에 들어간다는 목표다.
가전사들도 8K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샤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 CES에서도 8K TV를 선보여 무안경 3D를 구현했고, 파나소닉도 8K TV를 공개했다. 소니는 이미 8K 카메라를 상용화했고, 도시바가 8K 생중계 솔루션을 개발하는 등 일본은 정부, 가전사, 방송사가 8K 시대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상파를 중심으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8K 실험중계하겠다는 계획만 있을 뿐 구체적인 8K 대응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4K에 대한 교통정리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UHD는 TV를 파는 가전사, 700㎒ 주파수를 원하는 지상파, 프리미엄 시장 확보를 원하는 유료방송이 따로 노는 모양새”라며 “일본보다 고화질(HD) 시대는 먼저 열었지만, UHD는 4K에 이어 8K도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CES에서 삼성전자가 98인치 8K TV를 공개했을 뿐 국내 업계의 8K 행보는 지지부진하다.
업계에서는 8K에 대한 정확한 역할을 먼저 정해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디스플레이 업체 관계자는 “8K는 가정용보다는 극장, 공연장 등 상업용에 어울린다는 의견도 많다”며 “일본의 NexTV-F처럼 정부와 민간 업계를 아우르는 UHD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