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이상한 검
3
오랜 항해 끝에 방금 당도한, 바닷바람에 휩쓸려 너덜해진 돛의 모습으로 들어선 자는 아틸라의 아버지 문주크의 충복이었고 아틸라의 충복인 에르낙이었다. 오른쪽 뺨은 깊게 도려져 허연뼈가 보일락 했고 눈썰미는 허기진 매를 닮아있었다.
“왕자님이 언젠가 결국 도착하실 땅 실라(Silla, 신라의 다른 이름)는 왕자님의 혈족 김눌지 왕이 다스리고 있고, 그중 아틸라 왕자님의 검을 직접 받아보실 분은 왕자 미사흔입니다.”
“왜 다른 왕자도 아닌, 하필 미사흔인가?”
아틸라의 음성은 건조했다.
“왕자 미사흔은 타국에 볼모로 있을 때도 우리의 조상, 투후 김일제에 대한 소식을 꾸준히 수집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아틸라 왕자님을 어렴풋이 알고 있고 황금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큰 남자입니다.”
에르낙의 말투는 느릿느릿 바닷게의 걸음걸이였다. 아틸라의 작은 눈이 갑자기 커지는 듯했다.
“위대한 황금의 제국의 건설이라...음, 왕 루가도 아니고 왕자 블레다도 아닌 바로, 아틸라 내가 모든 땅을 정복하며 결국 그곳, 실라, 내 어머니의 땅에 도달할 것이다. 내가 진짜 훈이다.”
에르낙은 몰래 숨어드는 안개처럼 속삭였다.
“루가 왕과 블레다 왕자가 아틸라 왕자님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선 안된다. 그들은 땅을 정복하는 자들이 아니라 권력을 정복하는 자들이다. 권력을 정복하는 자들은 항상 바뀌기 마련이다. 난 그들을 역사에 지워버릴 것이다.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리라.”
불과 이십 세 안팎의 아틸라의 처세는 백전노장의 그것이었다. 벌써 전설이 되려는가?
“누가 가는가?”
아틸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여인의 향기가, 여인보다 먼저 도착했다. 아틸라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여인은, 매우 당당했다.
“제가 갑니다. 에첼입니다. 왕자 아틸라.”
여인의 목소리는 한여름 푸른하늘의 흰구름처럼 또렷했다.
“그 먼 길을 여인이 혼자 가는가?”
에르낙이 성큼 나섰다.
“진짜 훈의 여인입니다. 진짜 실라의 순혈입니다.”
에첼이 눈빛을 반짝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각각 회색빛과 호박색빛을 띠고 있었다.
“내가 너의 눈빛을 안다. 너에게 이 검을 주겠다. 왕자 미사흔에게 말하라. 왕자 아틸라는 곧 왕자 미사흔이다. 내가 만나러 갈 것이다. 우리가 진짜 훈이 될 것이다.”
에첼은 정중히 무릎을 꿇고 검을 아득히 받들었다.
“그의 아들을 낳아 오너라.”
“어릴때부터 왕자 아틸라를 모시고 싶었습니다. 먼저 모시게 해주십시오.”
아틸라와 에첼의 시선이 헝클어지며 엉켰다.
“권력에 다가서면 사랑을 잃게된다.”
에첼의 눈빛은 앞으로 그녀가 신라로 가기 위해 타고 갈 바다의 격랑이 되어 산산히 부서졌다.
미사흔은 검 앞에 흔들림없이 앉아있었다. 그의 옷은 땀에 젖어 그의 몸이 부끄럼없이 드러나보였다. 여러 날 여러 밤 동안 미사흔은 이런 자세였다. 검은 미사흔을 꼼짝도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어느새 에첼이 다가와 작은 꽃떨기처럼 앉았다. 미사흔은 긴장했다. 매우 이국적이었지만 어렴풋한 고향에 가까운 여인의 체취였다. 초원의 말냄새와 초원의 후미진 늪냄새를 가진 여인이었다. 왜국의 여자들은 비릿한 생선냄새가 역했다.
“이 검을 받은 자는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검은 왕소군보다 유혹적이고 시황제 보다 강하다고 했습니다.”
미사흔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의 고단한 여러 날 여러 밤이 먼지가 되어 가뿐하게 흩어졌다.
“내가 이 검을 받겠다. 오직 이 검만이 나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
미사흔은 검을 들어 날을 세웠다. 그의 눈빛이 칼날보다 더 뾰족했다.
글 소설가 하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