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재·부품·장비 등 정보기술(IT) 후방 산업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고전하면서 수요가 줄어든 데다 환율이란 복병까지 만났기 때문이다. 시장 침체와 환율 이중고가 지속되면 한계에 내몰리는 기업들이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대다수 국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은 비상 경영에 돌입했다. 허리띠를 졸라 매며 비용 절감에 나설 뿐 아니라 인력 감축 등 극약 처방에 나선 업체도 적지 않다.
지난 4월 이후 삼성전자 스마트폰 수요가 급속도로 꺾이면서 상당수 협력사들이 1차 충격을 겪었다. 전략 스마트폰인 갤럭시S5 판매량이 부진한 데다 중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점유율을 확대한 탓이다. 최근 원화 강세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삼성전자 협력사 채산성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인 셈이다.
대다수 국내 협력사들은 중국·베트남 등 해외 공장에서 삼성·LG 등 현지 고객사에 납품하고, 달러나 위안화로 대금 결제를 받는다. 위안화는 다시 달러로 환전해 본사로 송금한다. 어떤 회사도 환율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그나마 삼성전자 매출 의존도가 낮고 거래처 다변화가 잘 된 업체들은 지난 4월 시작된 ‘삼성발 쇼크’에서 비켜 서 있었다. 삼성전자에서 빠진 물량을 중국 등 다른 거래처 물량으로 상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 충격은 거래처 다변화가 잘 돼 있는 업체도 예외가 아니다. 원화 강세 현상이 달러뿐 아니라 위안화·유로화 등 대다수 결제 통화 대비 나타나고 있는 탓이다. 다수의 통화로 결제를 한다고 해도 환차손을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이미 원·달러 환율은 연초 대비 4% 이상 급락한 상태다. 얼마 전에는 6년 만에 1010원이 붕괴됐다. 조만간 1000원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올 초 무역보험공사가 조사한 제조업 손익 분기점 환율은 대기업 1050원, 중소기업 1057원 수준이다. 원화 강세가 이어진다면 국내 후방 산업 기업들의 적자폭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올해 사업계획을 굉장히 보수적으로 잡아 원·달러 환율이 1020원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봤다”며 “만약 환율이 1000원 이하로 떨어진다면 수익을 낼 수 있는 회사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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