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디스플레이 시장의 약 50%를 한국 업체들이 점유하고 있다. 또 지난달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국제정보디스플레이학회(SID)에서 발표된 530편의 논문보다 오는 8월 우리나라 대구에서 열리는 IMID(International Meetings on Information Display) 학술대회에 제출된 논문 수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이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확고한 위치에 서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디스플레이산업은 패널을 생산하는 팹(Fab) 라인 외에 구동용 IC와 백라이트 조립, 보호 필름 부착과 같은 인건비와 직접 연관된 후방산업의 의존도가 크다. 또 시장이 성숙단계에 진입함에 따라 반도체와 달리 기술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우리 기업들은 자금력을 가진 대만 기업이나 노동력을 앞세운 중국 기업 등에 바짝 추격을 받고 있다. 재팬디스플레이(JDI)와 같이 몸집 불리기로 다시 부활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일본 기업에도 추격의 고삐가 주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한국 디스플레이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디스플레이 세계 1등 국가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우선 액정표시장치(LCD)에 보다 더 집중해야 한다. LCD 패널 가격은 시장 성숙기와 중국 업체들의 진입에 따른 과잉 경쟁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게다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 형성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에 OLED 대비 LCD의 약세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 진보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TFT LCD 패널 제조 원가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기술 개발에 집중한다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다. 진공을 사용하지 않는 인쇄 공정이나 롤투롤(roll-to-roll) 공정 등 생산 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기술, 투과율을 향상시키는 기술 등이 대표적인 예다.
다음으로 OLED로 차별화해야 한다. 최근 우리 업체의 8세대 LCD 팹이 중국에 준공됐다. 이제 LCD의 기술 진입 장벽은 없다고 보면 된다. 반도체 산업과는 달리 팹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고 재료 부품의 비중이 큰 LCD산업에서는 이미 예상됐던 일이다. 하지만 OLED는 OLED 백플레인(backplane) TFT 기술, 봉지 기술 등 고도화된 기술 적용에 따라 기술 진입장벽을 높일 수 있다. 우리 업체들이 OLED 핵심기술에 집중해 추가 리드타임을 수년간 벌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융합형 디스플레이의 원천 기술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프리폼(Free Form) 디스플레이, 자동차용 투명 디스플레이, 플렉시블 기술, 바이오 디스플레이 등 차세대 디스플레이 응용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들 디스플레이는 아직 기술 표준이 정해지지 않았고, 높은 기술 노하우를 요구하기 때문에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과거 ‘고생은 한국이 실컷 하고 실속은 일본이 챙긴다’는 ‘가마우지 경제’를 타산지석 삼아 하나의 원천기술이라도 우리의 것으로 확보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디스플레이 종주국으로 1990년대 초반에 LCD의 붐을 일으키고 지금도 많은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을 보자. 샤프를 제외하고는 다수의 디스플레이 회사들이 산업변화와 기술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JDI라는 하나의 회사로 통폐합됐다.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 10년 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합병해 KDI(Korea Display)로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세계 1등 산업군인 디스플레이 분야의 원천기술 개발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디스플레이는 인간과 세상을 연결해 주는 통로이자 세상을 보는 창이다. 2024년께 미국에서만 60년 이상 개최됐던 SID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되고, 전 세계 모든 우수 인재와 기업들이 세계 디스플레이 산업의 메카인 한국으로 몰려드는 것을 꿈꿔본다.
김현재 연세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hjk3@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