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은 바람처럼 찾아왔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이 이른바 ‘공익근무’를 시작한 지 하루 만에 ‘아들 이중국적과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됐다. YTN이 이런 의혹을 처음 보도했다. 진 장관에게 일생 최대의 시련이 닥쳤다.
2003년 2월 28일.
진 장관은 취임 이틀째를 맞아 아침부터 실·국별 업무보고를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왕 공직에 들어선 이상 ‘세계 최고의 장관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그날 오후 장관실로 류필계 당시 공보관(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급히 들어섰다.
류 공보관의 증언.
“그날 오후 YTN이 언론 중 처음으로 진 장관 아들의 이중국적 등의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장관실로 올라가 사실 여부를 확인했습니다. 장관도 당시 정확하게 내용을 알지 못하셨습니다.”
진 장관의 증언.
“그동안 앞만 보고 달리느라 집안일에는 아는 게 거의 없었습니다.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겨 놓고 살았습니다. 아내에게 물어본 후 류 공보관에게 이야기를 했는데 기자들은 구체적인 근거 제시를 요구했습니다. 처음엔 기억나는 대로 나름 성심껏 답변했는데 서류와 차이가 나자 말을 바꾼다거나 거짓말을 한다는 식으로 보도를 하더군요.”
류 공보관의 계속된 말.
“처음에는 정통부 출입기자들이 이 문제를 파고들었습니다. 밤늦게까지 기자들을 만나 사실관계를 설명하고 협조도 구했습니다. 그런데 사나흘쯤 지나자 정치부 기자들이 가세해 정치 쟁점화했습니다. 모든 언론이 혹독한 인사검증에 집중했습니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청와대가 나섰다.
변재일 당시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의 회고.
“언론이 진 장관 아들 문제를 집중해서 다루자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국회 부의장 역임, 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내게 전화를 하셨어요. 문 실장께서 ‘진 장관 아들 의혹제기를 철저히 방어하라. 노무현정부의 첫 혁신 장관 발탁인데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김동수 당시 감사관(정통부 차관 역임)과 같이 언론과 국회 등을 상대로 해명하고 협조를 구했습니다.”
진 장관 아들 의혹은 청와대로 불똥이 튀었다. 언론이 일제히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 부실문제를 지적했다.
3월 4일 오전 9시.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첫 국무회의가 청와대 본관 세종실에서 열렸다. 노 대통령은 회의 시작 3분 전인 오전 8시 57분에 입장해 국무위원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눴다.
노 대통령은 회의를 주재하기에 앞서 “개회 전에 잡담(雜談) 한마디 하자”며 진 장관 아들의 이중국적과 병역 문제를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진 장관 아들 문제는 임명 전 충분히 살폈으며 전체적으로 살아온 과정에서 볼 때 자연스러운 일이고 특별히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미주 동포들과 만났을 때 세계화 시대에 이중국적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중국적을 무차별적으로 허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악의가 없는 것은 폭넓게 허용해 한국인의 활동 무대를 세계로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진 장관에게 상심하지 말라. 열심히 일해 달라”고 당부했다.
진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심려를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노 대통령은 거듭 “너무 마음 상하지 말라”고 위로했다. 진 장관에 대한 노 대통령의 신뢰는 견고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진 장관에게 “삼성전자의 스톡옵션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진 장관이 “스톡옵션은 근무일수가 며칠 모자라 포기해야 될 것 같다”고 말하자 “거참 아깝구먼. 그런 줄 알았으면 일주일 정도 있다가 임명장을 주는 건데…”라고 말해 웃음이 터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김영삼정부 때는 CDMA 기술을 정부과제로, 김대중정부 때는 IT산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면서 “‘참여정부’에선 어떤 분야를 정책과제로 할지 구상해 달라”고 당부했다.
청와대는 이날 국무회의 후 진 장관의 아들 이중국적 논란에 대해 “악의가 없어 문제 삼지 않겠다”고 공식 밝혔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아들이 미국 국적인 게 결정적인 흠이 될 수 없다는 데 인사위 구성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은 도덕적 결함이 있는 진 장관을 청와대가 감싼다며 퇴진압박 수위를 낮추지 않았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은 성명을 내고 “진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라”고 촉구했다.
진 장관의 회고.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왜 공직에 들어와 이 난리를 겪어야 하나 싶었습니다. 솔직히 ‘최단명 장관’이라는 기록만은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일주일만 지나 그만두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들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저녁 청와대 비서실에서 진 장관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3월 5일 아침 청와대로 들어와 노 대통령과 조찬을 하자는 연락이었다. 진 장관은 상황변동이 생긴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사퇴서를 작성해 청와대로 들어갔다.
조찬은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네 명이 했다. 조촐한 한식이었다.
진 장관이 전한 노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
“삼성전자 재직 시에 있었다는 대표소송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1995년 당시 반도체 전무 시절 그룹 결정에 의례적으로 참여한 일이 있습니다. 그후 1998년 부당 내부거래 관련 민사소송에 저도 포함되었습니다. 저와는 무관한 일이었습니다.”
세무(稅務)에 밝은 노 대통령은 금세 상황을 파악했다.
“그거 별 문제가 아니군요. 그건 그렇고 요새 어떻습니까. 언론에 시달리니 좀 괴롭지요. 하지만 너무 걱정마세요. 좀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내가 기자실에서 진 장관이 사퇴할 이유가 없다고 할까요.”
문 수석이 깜짝 놀라며 말렸다.
“안 됩니다. 대통령이 나서면 사태가 더 어려워집니다. 제가 기자회견을 하겠습니다.”
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제가 정부에 부담이 되면 사퇴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아직 먹을거리 장만하는 일은 시작도 안 했는데….”
청와대 관계자 A씨의 말.
“당시 인사 추천은 인사보좌관실에서, 검증은 민정수석실에서 했습니다. 삼성전자 부당내부거래 소송 건을 민정수석실에서 제대로 검증을 못했어요. 진 장관이 이 일에 직접 관여했다면 그냥 넘기기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문제가 안 된다는 걸 대통령이 이날 직접 확인한 것이죠.”
3월 6일 오후.
문재인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보좌관(청와대 인사수석 역임, 현 인재아카데미 이사장, 사단법인 사랑의빛 이사장)이 춘추관 기자실에 나타났다.
문 수석은 “이제 논란을 끝내줬으면 한다”며 더 이상 진 장관의 문제를 확산시키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정찬용 인사보좌관도 “진 장관은 우리나라 IT산업 발전을 위해서 가장 능력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해서 임명했다”며 “비록 진 장관이 개인적으로 흠결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장관 재임기간 중에 최대한 IT강국으로 한국이 우뚝 설 수 있도록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정찬용 보좌관의 회고.
“그는 반인륜이나 반사회적인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정통부 장관은 국민의 먹을거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돈 많이 버는 모범생이 해야 합니다. 진 장관 같은 인물은 우리가 국내에 불러들여서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끔 해야 하는데 이중국적, 또 자녀들의 병역문제 이런 부분을 폐쇄적으로 운영한다면 그분들이 국가에 봉사할 수 없게 되잖아요.”
당시 문화일보 기자로 활동하던 도올 김용옥 교수(현 한신대 석좌교수)도 3월 6일자 이슈진단에서 ‘진 장관 과연 돌 맞을 사람인가’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이 글에서 “나는 진대제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에게 개인적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 그러나 진대제가 정보통신부 장관으로서는 매우 적임의 유능한 인물이라는 것은 나의 객관적 정보통신의 자료에 의하여 확고히 판단할 수 있는 사항에 속하는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도 크게 기용될 수 있었지만 삼성에 와서 소위 반도체 메모리 셀의 메가 시대를 연 한국 반도체 업계의 파이어니어적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진대제는 세계적인 업계의 스카우트 대상이 되는 인물이기 때문에 그의 국제적 위상이나 발언권은 이미 범인의 스토리를 초월하는 것이다. 진대제라는 독립된 개체의 축적된 성실한 역량이 그 부수된 관계상황에 의하여 말살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 개인의 손실이기에 앞서 국가적 상실이다. 정통부는 디지털시대의 기술융합을 효율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국가 부서이며 국민의 도덕적 기강을 세우는 철학적 기관은 아니다”며 “새로 출범한 행정부에도 너그러운 행동의 여백을 허락하는 성숙함을 과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여론은 수그러들었다. 10일 만에 인사파문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 기간 중 인간적 고뇌는 깊었다. ‘무슨 영화(榮華)를 보겠다고 장관직을 수락해 이 고통을 겪어야 하나’ 하는 회한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체중이 5㎏ 이상 빠졌다. 진 장관은 마음의 앙금을 훌훌 털고 들메끈을 고쳐 맸다. 최단명 장관이 될 뻔한 그는 특유의 열정으로 최장수 정통부 장관의 기록을 남겼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