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견 기업 A사 사장은 최근 삼성전자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수년간 문을 두드렸던 삼성전자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은 처음이었다. A사 사장은 기대했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동안 일본으로부터 관련 부품을 공급받아온 삼성전자가 백업 서플라이어로 A사를 찾아온 것이다. A사로선 대형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는 기회로 단가만 잘 맞춰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협상 테이블에서 삼성전자는 단가를 협상하지 않았다. 원하는 가격에 납품 할 수 있게 해줄테니, A사의 핵심 사업 영역인 재활용 부품 시장에선 손을 떼라는 조건을 걸었다. A사가 공급하는 제품은 소모성 부품이기 때문에 재활용 시장도 크다. A사는 재활용 부품 시장에서도 선두 업체다. 삼성전자가 이런 제안을 한 데는 A사가 재활용 사업을 접으면 삼성전자의 정품이 좀 더 잘 팔릴 것이라는 단순한 계산 때문에서다.
A사 사장은 일본 협력사에게도 동일한 제안을 하냐고 물었다. 삼성전자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그쪽은 일본 업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잠시나마 희망을 가졌던 A사 사장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했다. A사 사장은 결국 이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도 삼성전자는 이 조건으로 협상의 손을 계속 내밀고 있다.
협상은 당사자들간 양방향 의사소통을 통해 합의에 이르는 과정이다. 협상이 안 되면 계약도 이뤄지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업계에서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 이기는 협상을 하고 만다. 일부 협력사들 사이에선 삼성과의 계약을 ‘노예 계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삼성전자가 협력사를 진짜 ‘파트너’로 생각한다면 협상 테이블에서 이기겠다는 전술보다는 양사의 만족도를 높이는 전술을 펼쳐야 한다.
최근 창원 지역 부품 업체들 사이에선 ‘노키아 향수’가 만연하다. 그만큼 노키아는 국내 협력사들과 ‘윈윈’ 협상과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원하는 것을 무작정 많이 얻으려 할 게 아니라 ‘현명하게’ 얻어야 하는 게 무엇인지 삼성은 고민해야 한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