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태양전지로 불리는 ‘구리·인듐·갈륨·셀레늄(CIGS) 박막태양전지’ 사업에서 국내 업체가 연이어 손을 떼고 있다. 결정질태양전지에 비해 시장도 열리지 않아 사업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반면에 중국·대만 등 해외는 상업화에 적극 나서는 등 정반대 행보를 걷고 있다. 자칫 글로벌 차세대 태양전지 시장에서 우리 기업 경쟁력이 크게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다.
LG그룹은 태양광 사업을 LG전자가 담당하는 결정질태양전지 사업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에 따라 LG이노텍이 추진한 CIGS 박막태양전지 R&D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노텍은 이미 CIGS 사업을 크게 축소했다. R&D 관련 인력의 80%가량이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주관하는 산업기술개발장비 일제 정비 사업을 통해 CIGS 박막태양전지 제조장비 8기도 모두 무상 기증했다.
이노텍은 2011년 CIGS 박막태양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LG전자가 결정질태양전지 사업을, 이노텍이 CIGS 효율 개발 등 R&D를 추진하기로 그룹 차원에서 교통 정리된 상황이었다. LG관계자는 “CIGS사업을 유지·확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LG그룹 태양광 사업을 결정질태양전지 사업에 한정하기 위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LG이노텍의 사업 중단으로 CIGS 박막태양전지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2010년을 기점으로 현대아반시스·삼성SDI·LG이노텍·SK이노베이션이 차례로 사업에 진출했지만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삼성SDI 하나로 전락했다.
SK는 2011년부터 미국에서 추진해온 CIGS사업을 최근 정리했다. 7660만달러를 들여 사들인 태양전지 기업 헬리오볼트 지분을 전량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양산에 나서기 위해서는 수천억원 규모의 추가 투자가 필요하지만 수익성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가장 먼저 상업화 나선 현대아반시스는 프랑스 합작사 생꼬방의 갑작스런 사업 철수로 사업을 중도 포기했다. 지난해 1월 공장 가동을 중지한 채 아직까지 별 움직임이 없다.
남은 것은 삼성SDI뿐이다. 명맥은 유지하지만 삼성도 투자는 소극적이다. 올해 상반기 착공하기로 한 200㎿규모 CIGS 박막태양전지 제조라인은 투자를 매듭짓지 못한 상태다.
국내 기업이 CIGS사업에 시큰둥한 데는 막대한 투자 부담 때문이다. 여기에 태양광 시장이 결정질태양전지 중심으로 형성되고 가격도 빠르게 하락해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는 판단이다. 태양광 제품 가격 정보사이트 ‘PV인사이트’에 따르면 결정질태양전지 평균가격은 9일 기준 와트(W)당 0.628달러, 박막태양전지는 평균 0.624달러다. 업계는 효율 박막태양전지 가격이 결정질태양전지 가격의 50% 수준으로 내려가야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이다.
시장을 90% 이상 장악한 결정질태양전지 사업에서 고전하는 기업이 많아 CIGS 등 박막태양전지 사업 투자를 늘리는 것이 큰 부담인 셈이다. R&D 분야에서도 최근 2년간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이 공고한 ‘신재생에너지융합원천 중장기 과제’ 가운데 박막태양전지 기술개발 사업은 기업 참여가 전무했다.
반면에 해외 기업 행보는 공격적이다. 대만 TSMC는 CIGS 태양전지 생산량을 연산 40㎿에서 올해 3분기 120㎿로 확대했다. 중국 하너지도 최근 600㎿규모 CIGS 태양전지 생산라인을 착공했다. 앞으로 3GW까지 생산능력을 확대한다. 두 기업은 이르면 내년 초 양산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CIGS 시장이 열리면 국내 기업이 추격하기가 불가능하다고 지적한다. CIGS는 중동과 사막 등 고온의 선벨트 지역에 적용 가능성이 높다. 고온 환경에서 효율 감소 정도가 결정질 태양전지의 절반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태양전지 효율 한계를 극복하는데도 박막 기술이 필수다. 최근 결정질태양전지 제조기업도 CIGS 등 박막기술을 통한 효율 향상에 주력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이해석 고려대 교수는 “앞으로 태양광 기업이 생존하기 위한 조건으로 결정질·박막태양전지 기술의 동시 확보가 필수”라며 “결정질 시장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중국기업과 차별화할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이지만 당장 사업성이 없다는 것이 기업 투자를 주저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용어 설명> CIGS 박막태양전지=유리나 알루미늄 판에 구리·인듐·갈륨·셀레늄을 증착해 만든다. 얇은 필름형태로 건물 외벽과 창문 등에 적용 가능해 차세대 태양전지로 불린다. 고온 환경에서 기존 결정질 태양전지에 비해 효율감소가 적어 중동, 사막 등 선벨트 지역에 적용할 수 있다. 주류인 실리콘 기반의 태양전지보다 생산단가가 30% 이상 저렴하지만 광전환 효율은 기존 결정질 태양전지(18~20%)보다 낮다. 하지만 최근 삼성SDI, 솔라프론티어 등 기업이 16%대 효율을 달성하면서 상업화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 유선일기자 ysi@etnews.com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국내 태양광 기업 박막태양전지 사업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