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온고지신]세종의 리더십과 창조경제

세종 때는 창의력이 참으로 넘치는 시대였다.

측우기, 물시계 등 훌륭한 천문기기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화약무기 분야에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상천외한 발명품이 유난히 많았다.

[사이언스 온고지신]세종의 리더십과 창조경제

19세기 이전 세계 최대 크기의 로켓무기였던 대신기전, 세계 최초 2단 로켓이었던 산화신기전, 한번에 100여발의 중, 소신기전을 쏘거나, 세전 200발을 쏠 수 있었던 화차, 여성이나 어린이들도 사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권총인 세총통, 삼각총구를 가진 이총통, 차세전 12발을 장전하고 한 번에 쏠 수 있었던 8전총통도 이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사극이나 역사영화를 보면 조선시대 초기에 사용하였던 우리의 화약무기는 별로 보이지 않고 활과 칼, 창이 대부분이지만 사실은 세계 최강의 화약무기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세종 때 개발된 화약무기를 집대성해 놓은 국조오례서례의 병기도설에 보면 총의 종류가 11종, 미사일인 신기전이 4종, 폭탄류가 8종, 각종발사물이 10종이 있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화약무기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부녀자나 어린이도 사용할 수 있었던 세총통(細銃筒)은 청동으로 만든 길이 14㎝, 외경 14㎜, 총구 8.4㎜, 무게 130g의 아주 작은 총이다.

세총통은 길이 22㎝의 가느다란 대나무 화살인 세전(細箭)을 1발 장전하고 발사했다. 세총통은 손으로 쥐고 발사하기에는 너무 작았다. 또한 청동으로 만들어 발사하고 나면 곧 뜨거워지기 때문에 철흠자(鐵欠子)라는 이름의 집개를 철로 만들어서 세총통의 중간 부분을 집어서 사용했다.

철흠자는 2개의 S자 형태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은 가지는 길이가 20㎝, 큰 가지는 길이가 34㎝이다. 작은 가지와 큰 가지의 위 끝에서부터 3.5㎝ 떨어진 지점에 구멍을 뚫고 철못으로 고정시켜 연탄 집개처럼 자루부분을 벌리면 위의 총통을 잡는 부분도 벌어지고 자루부분을 오므리면 윗부분도 좁아져서 총통을 꽉 잡도록 과학적으로 되어 있었다.

철흠자의 윗부분으로 세총통의 몸통부분을 집은 후 작은 가지의 아래 끝을 긴 가지의 중간부분에 걸어서 세총통이 철흠자로부터 떨어지지 않게 설계되어 있었다.

세종 때 개발된 총 중에는 총구멍이 삼각형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었다. 이러한 내부형태의 총도 아마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세종 때의 총은 주로 화살을 넣고 발사하였는데 꼬리에 날개가 3개 붙은 나무화살을 넣고 쏘기 좋게 만들기 위해 총구를 삼각형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총통완구라는 대포도 있었는데 직경 33㎝의 큰 돌덩어리를 쏠 수 있도록 되어있어 총구는 직경이 42㎝의 큰 그릇처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다보니 포의 무게가 무거워져서 2개 부분으로 분리해서 이동하고 발사할 때는 하나로 조립해서 사용했다.

당시 가장 큰 대포는 장군화통인데 총구의 직경이 10㎝, 길이가 90㎝인데 길이 190㎝의 대전(大箭)을 사용했다. 당시 사용한 설계 자료를 보면 한 눈금이 0.3㎜인 리(釐)라는 단위까지 사용해서 아주 정밀하고 과학적으로 제작, 사용했다.

세종 때 이렇게 훌륭한 과학기술의 성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세종이라는 훌륭한 리더가 박강, 최해산, 장영실 등 훌륭한 인재를 잘 뽑아 활용했기 때문이다. 세종은 자주 들릴 수 있도록 궁궐 옆에 대장간을 짓게 하고 화약무기를 연구하게 하였으니 당시의 과학기술자들은 정말 신바람이 났을 것이다.

이 당시 북방의 여진족과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개발한 각종화약무기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뛰어난 손재주와 과학기술 창의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창조경제의 성공과 미래의 과학강국이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우수한 과학기술 DNA를 찾아내서 잘 발전시킬 수 있도록 과학술자들을 어떻게 신바람 나게 해주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된다.

채연석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교수, gogospac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