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R&D장비, 이제는 ‘공유’다

각종 연구소·학교에서 사용하는 산업기술개발장비는 고가인 경우가 많다. 1대당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에 달한다. 중소 연구소는 물론이고 대형 기관도 가격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수 장비 없이 원활한 연구개발(R&D)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는 불가능하다. 정부가 매년 상당한 예산을 장비 구축 지원에 할애하는 이유다.

[이슈분석]R&D장비, 이제는 ‘공유’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기반조성사업·기술개발사업·지역사업 등을 바탕으로 약 3조원을 장비 구축에 투자했다. 이를 통해 3000만원 이상 장비 2만1632대를 구축했다. 1억원 이상 고가 장비가 전체의 74%를 차지한다.

하지만 장비는 구축 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산업부가 장비 활용에 대대적 변화를 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Tube로 장비활용 ‘확 높인다’

장비는 산학연 공동활용장비, 기술개발용 단독활용장비로 구분한다. 이 중 63%가 공동활용장비다. 정부 예산을 투입한 만큼 활용 범위를 넓혀 R&D 효과를 극대화 한다는 목표다. 하지만 2012년 기준 공동활용장비 가동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46%를 기록했다. 장비가 필요한 장소·시기에 적절히 활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산업부는 그동안 정책이 개발 수요 지원을 위한 신규 구축에 치중해 산업현장 수요와 괴리됐다고 평가했다. 장비 이용 정보가 부족하고 관련 제도가 갖춰지지 않는 등 공동활용에 필요한 기반도 취약하다는 평가다. 또 장비 도입심사가 형식적이고 렌털 시장 활용과 공동활용장비 개발 노력이 부족해 장비 도입 효율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산업부는 문제 해결을 위해 장비통합관리플랫폼(e-Tube) 활용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기술개발장비 도입·활용 혁신대책’을 내놨다.

e-Tube(etube.re.kr)는 공동활용장비 정보를 통합 제공한다. 장비 검색, 위치·사양 확인, 온라인 사용예약, 사용후기 작성 등이 가능하다. 원하는 장비가 있으면 e-Tube에 접속해 검색하면 장비 모델명과 취득연월일, 관리기관과 장소, 연락처 등을 알 수 있다. 산업부 장비 이외 중고장비도 사고팔수 있다.

이와 함께 ‘산업기술개발장비 통합관리요령’을 국가 R&D 사업에 적용했다. 그동안 산업기술혁신 법규에 산재돼 운영되던 산업기술개발장비 관련 규정을 통합해 장비 도입부터 운영, 폐기까지 모든 절차를 e-Tube로 간편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화 한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정부 관리가 일정 영역에 한정됐다면 이제는 e-Tube로 장비 구매·활용·처분까지 전주기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며 “기관끼리 정보 공유가 안 돼 같은 장비를 서로 다른 가격에 구매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e-Tube 활용도가 아직 낮고 장비 정보가 비교적 상세하지 않은 것은 개선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연식이 너무 오래돼 사실상 활용이 불가능한 장비가 있는 반면 일부는 이용 경쟁이 너무 심하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유휴·불용장비 일제정비로 78대 ‘새 생명’

산업부는 그동안 구축한 산업기술개발장비 중 보유기관이 잘 쓰지 않는 유휴·불용장비를 활용 가능한 다른 기관으로 이전하는 ‘유휴·불용장비 일제정비사업’을 추진했다.

그동안 구축한 2만1632대 중 2013년 말 기준 법인세법상 내용연수(최장 5년) 종료 장비는 1만여대, 유휴·불용상태인 장비는 1800여대로 파악된다. 하지만 장비관리 책임에 따른 부담과 정부 승인절차로 인한 불이익 등을 우려해 각 기관이 유휴·불용장비 이전을 꺼린다고 판단, 이번 사업을 바탕으로 장비 활용도를 높였다.

산업부는 이번 사업으로 총 249대 장비를 접수했다. 이 중 즉시 또는 수리 후 활용 가능한 150대를 무상양여 대상 장비로 공고해 양수 희망신청을 받았다.

그 결과 대학, 공공연구소 등 59개 기관이 유휴장비 78대를 양수하고 싶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산기평 중앙장비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총 41개 기관에 유휴장비 78대를 무상 양여하기로 결정했다.

전북새만금산학융합본부, 한국계량측정협회, 건설기계부품연구원, 경기과학기술대학교 등 그동안 R&D 장비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기관이 지원을 받았다. 이들 기관이 양수한 장비는 주사전자현미경, 입도분석장치, 오실로스코프, 초음파 세정기, 질량분석기 등이다.

이번 양여되는 장비는 구매가 기준 총 99억1058만원으로, 이에 따른 신규 구입 예산 절감 효과를 거뒀다. 산업부는 양여 대상 장비의 이전설치, 수리비 등으로 총 3억7000만원을 지원한다. 장비당 470만원을 투자해 1억2700만원의 장비를 활용할 수 있게 돼 투자 대비 27배의 경제적 효과가 기대된다는 분석이다.

산업부는 8월까지 장비를 양수기관에 이전할 계획이다. 나머지 유휴장비(72대)는 9월 10일까지 e-Tube를 통해 추가 양수신청을 받아 처분한다. 산업부는 양수기관의 장비 이전 설치에 소요되는 경비로 장비 당 취득가의 10% 이내에서 약 2000만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유선일기자 ys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