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기, 너무 쉽게 쓴다

[기자수첩]전기, 너무 쉽게 쓴다

최근 전기 인덕션레인지가 유행이다. 좀 산다는 집은 가스레인지에서 갈아탄 지 오래다. 수십만원에서 100만원을 호가하는 인덕션레인지를 굳이 사는 이유는 안전과 건강 때문이다. 전기를 쓰니 가스 누출 위험도 없고 불완전 연소에 의한 실내 공기 오염에서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용기만 뜨거워질 뿐 레인지는 그대로니 아이들 있는 집에서도 인기다. 전기요금도 한 달에 2만원가량 더 내면 충분하다고 유혹한다.

하지만 간과한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정격 용량이다. 일반적으로 3구짜리 인덕션레인지는 4000~5000W 수준이다. 한 구당 1500~2000W다. 라면 하나 끓이는 데 10분이라고 가정하면 한 구에 2000W 기준으로 300W/h가 넘는다. 라면 하나 끓이는데 전자레인지 한 대를 한 시간 넘게 사용한 것과 같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전력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공급이다. 5000W급 인덕션레인지가 10만대 보급되면 설비 용량 기준으로 화력발전소 1기가 더 필요하다.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 전력공급이 1년 내내 여름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여름철 전력 예비력이 크게 늘어난 것은 무더위가 오기 전인 6월에 정비를 끝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름이 지나면 상당수 발전소가 정비에 들어가면서 예비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 때 전력 수요가 줄지 않으면 바로 블랙아웃이다. 지난 2012년 대규모 정전이 전력피크 시기가 아닌 9월에 발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인덕션레인지와 같은 가정용 전기기기는 계절 수요와 상관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최근 보급이 늘어난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모두 전력 사용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가정용이라 정부가 관여하기도 힘들다. 모바일 기기가 늘어나면서 충전을 위한 전기 사용도 급증하고 있다. 여름철 아파트 변압기가 폭발하는 것도 아파트 내 전기기기가 용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전력 공급량은 무제한 늘리기 어렵다. 새로운 발전소 건설은커녕 효율개선 작업도 주민동의를 얻어야 가능할 정도다. 개인이 요금을 내지만 전기는 분명 공기(公機)다. 쉽게 쓰는 전기는 분명 부메랑이 돼 돌아오기 마련이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