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세계 소재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추진 중인 ‘세계일류소재(WPM)’ 사업 예산 규모가 내년에도 줄어들 전망이다. 4년 연속 감소세다. 정부 예산만 1조원으로 책정했던 매머드급 프로젝트가 이미 7000억원 규모로 축소된 상황에서 이마저도 뒷걸음질치는 분위기다. 소재 산업의 중요성을 감안해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사업화 추세에 맞춰 대기업의 투자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6일 관계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 2010년부터 추진해온 WPM 사업의 내년도 예산이 전년 대비 소폭 감소하는 방향으로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도 줄어들면 2012년부터 4년째 예산 삭감이다.
WPM 사업은 옛 지식경제부가 지난 2009년 ‘세계 4대 부품소재 강국’ 진입 계획의 일환으로 수립한 대규모 연구개발(R&D) 프로젝트다. 이듬해인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정부 예산만 총 1조원을 투입, 세계 시장에서 10억달러의 매출과 점유율 30% 이상을 올릴 수 있는 10대 일류 소재를 개발하는 사업이다. 사업 기간의 절반 정도가 지난 가운데 참여 중소기업이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고 900여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에 정부 예산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2차연도인 지난 2011년 950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2012년부터 올해까지 내리막길을 걸었다. 올 예산은 669억원으로 2011년 대비 30%나 감소했다. 현재 논의 중인 내년 예산안에서도 WPM 몫은 줄어들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WPM 예산 계획은 사업 초기 총 1조원에서 지금은 7000억원 수준으로 이미 한 차례 하향 조정된 상황이다. 지금 예산 추이로는 7000억원 투자도 장담하기 힘들다. 자칫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며 요란하게 출범한 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추진 동력을 잃어가는 정부 중장기 R&D 사업의 고질병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WPM 예산 삭감 움직임은 근래 정부의 보수적인 산업기술 R&D 기조에 대기업 지원 비중을 낮추는 추세가 맞물린 결과다. WPM 사업은 많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한 소재 개발 특성상 다수의 대기업이 참여한다. ‘대기업 지원 사업’이라는 인식이 강해 예산 확대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때문에 주관부처 산업부는 정부 출연금을 늘리기보다 대기업 투자분담 비율 상향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WPM 사업의 민간 부담 비율 목표치는 당초 47% 이상이었으나 지금까지는 43%에 머물렀다. 산업부는 올해를 기점으로 47% 이상으로 높여갈 계획이다.
이것만으로는 전체 R&D 총액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대기업 신규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WPM 사업 참여기업들은 지난 2010년 정부 출연과 민감 분담금 외에 10조50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산업부와 협약을 맺었다. 하지만 사업화 초기인 탓에 지금까지 이뤄진 추가투자는 1조원 수준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WPM 5년차가 지나면서 사업화에 접어드는 과제가 많아지기 때문에 시생산 설비 등 민간 기업의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재 분야 한 전문가는 “소재 R&D는 2~3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나서 대중소기업 협력 체제를 구축하고 지원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이 같은 취지를 재인식하고 반짝 사업이 아닌 중장기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도별 WPM사업 예산 추이 (단위:억원)
※자료:산업통상자원부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