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도 초전도를 이용한 양자측정용 큐빗(양자비트)을 제작, 제어하는 기술력이 확보됐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양자측정센터(센터장 최상경) 정연욱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극초저온의 고주파 상태서 1채널(1개 큐빗)의 큐빗을 만들어 매우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기반기술을 확보했다고 17일 밝혔다.
현재는 1채널(1개 큐빗)에 불과하지만, 기반기술과 장비가 구축된 만큼 향후 인력과 예산의 추가 투입만 뒤따르면 더 많은 수의 큐빗 제작 및 제어도 가능하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큐빗에 전 세계 과학자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양자컴퓨터 때문이다. 일반 컴퓨터는 트랜지스터에 한 개의 디지털정보(비트)가 담기는 반면에 양자 컴퓨터는 중첩원리에 따라 많은 정보량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양자정보를 한 개의 큐빗에 담을 수 있다. 큐빗의 개수가 증가할수록 처리하는 정보의 양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때문에 엄청난 속도의 계산력이 발휘되는 것이다.
연구팀은 초전도 큐빗을 구현하기 위해 냉동기를 구축하고, 절대영도보다 불과 1000분의 7K(캘빈온도) 높은 극저온 상태에서 수 ㎓대역의 고주파 신호를 단광자 수주에서 매우 정밀하게 측정하는 기술을 확보했다. 이는 초전도 큐빗의 양자상태를 자유자재로 쓰고 읽을 수 있는 안정적인 양자조작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다.
큐빗은 환경영향에 따라 양자정보를 쉽게 잃어버린다. 양자상태의 속성상 잡음신호나 열에 특히 취약하다. 연구팀은 이를 낮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노하우와 양자 안정화 기술로 해결했다.
난제였던 초전도 큐빗 소자는 3~4년에 걸쳐 모두 표준연 자체 기술로 제작했다. 기존의 반도체 클린룸 공정을 차용해 만든 조셉슨 소자 제작 기술을 양자전기표준 기술로 활용했다.
한 때 고주파 부품이 국방관련 군수기술과 관련이 있어 구하는 데 애로도 있었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현재 연구팀은 지난 2008년부터 진행한 1~2단계 연구를 통해 초전도 큐빗을 제작하고 제어하는 기반기술은 모두 갖춰놨다. 양자컴퓨터로 가는 걸음마는 뗀 셈이다.
오는 2016년까지 3단계 연구에서는 다수의 큐빗을 ‘얽힘 상태’에서 동시 측정하는 등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 실현에 접근할 양자역학적 측정기술을 한층 더 성숙시키는 연구에 도전할 계획이다.
정 책임은 또 일반인이 양자컴퓨터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우선 양자컴퓨터 구현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지만, 원리적으로는 구현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연구개발에 리소스를 얼마나 투입하는지 여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양자컴 성패 여부가 판가름 나는 시기로는 현재의 비약적인 기술발전 속도에 비춰 오는 2020년께로 예측했다.
정 책임은 “최초의 양자컴퓨터가 등장하더라도 그것은 최초의 컴퓨터인 ‘에니악’을 만든 정도의 성과로 보면 될 것”이라며 “특히 최근 D-웨이브사 등에서 주장하는 양자컴퓨터의 실현성 여부에 많은 논란이 있고,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양자컴퓨터의 구현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성급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현재 양자역학을 이용하고 있는 분야는 크게 세 가지다. 양자암호와 이를 이용한 통신은 간단한 데모 정도가 이루어진 상황이다. 암호 해독 등에 응용되는 양자컴퓨터 제작은 아직은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한 단계라는 것이 보편적인 전문가 시각이다.
정 책임은 “이 분야는 전략기술이기에 상호 기술이전이 어렵기 때문에 국가 차원의 컴퓨터센터 개념으로 활용하게 될 것으로 본다”며 “후발주자인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유럽처럼 양자컴퓨터로 나가는 것은 아직은 시간과 투자가 많이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