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사용과 상관없이 전기자동차 충전기를 보유한 것만으로 연간 수백만원의 전기요금이 부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충전기 설치에 별도의 한전 설비가 투입된 데 따른 전기요금 정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정부의 전기차 보급 활성화 정책과는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보급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환경부와 전력당국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20일 한전 전기차용 전기요금정책에 따르면 20분 전후에 전기차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50㎾급)를 아파트·주택에 설치하면 사용과 상관없이 매월 12만9000원의 기본 요금이 과금된다. 아파트 단지 내 전기차가 한 대도 없더라도 급속충전기가 설치됐다면 연간 155만원 전기요금 입주민 모두가 공동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100가구 아파트 단지에 급속 충전기 두 대를 설치하면 연간 전기요금은 최소 310만원이다. 결국 가구당 3만1000원가량을 내야 한다.
한전이 정한 급속충전기 전기요금은 계절·시간대에 따라 1㎾h당 최소 52원에서 최고 163원으로 보통 20㎾h급 전기차를 충전하는 데 1000원에서 3000원이 든다. 하지만 일반 전기와 달리 고압의 전력(50㎾급)을 쏟아내야 하는 만큼 고사양의 계량기, 변압기 등 배전설비를 별도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필요에 따라 전신주나 지중공사에다 유지보수까지 하기 때문에 최소 기본요금을 책정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전 측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의 전기차 보급정책에 대응하면서 편의시설 확충에 따른 가치상승을 기대했던 아파트 건설사·관리소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자체 충전인프라를 도입하는 아파트가 늘고 있어 주민 부담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아파트 건설사나 충전기 업계는 전기차 시장이 초기인 만큼 활성화 전까지 전기요금 체계를 일부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내 전기차 수는 전국을 통틀어 2000대 수준인 데 비해 2015년 전후 완공되는 신규아파트에만 수백기의 급속충전기가 들어선다. 업계 관계자는 “아파트 건설사들이 전기차 이용 활성화를 고려해 미리 충전기를 구축했지만, 전기차를 운영하는 가정은 찾기 힘든 상황에서 막대한 전기요금을 내야 하게 됐다”며 “더욱이 신규 아파트의 충전인프라 구축이 크게 늘고 있어 이 같은 부담은 주민에게 가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은 별도의 고압 설비가 들어간 만큼 기본요금은 어쩔 수 없이 부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용 고압계량기와 변압기를 포함해 장소에 따라 전신주 등 추가되는 배전설비 비용은 한전 예산”이라며 “이 같은 요금은 설비 유지에 필요한 최소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