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절전을 통해 절약한 전력을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올해 초 통과한 ‘전기사업법 개정안(전하진 의원 발의)’에 따른 것으로 정부는 하반기부터 하위법령을 설계하고 이르면 연내 관련 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번 조치는 그동안 정부 기관이 예산으로 운영하던 전력수요관리에 민간 기업이 참여하고 또 해당 절전량을 발전소의 생산전력과 동등하게 경쟁시킨다는 측면에서 전력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 발전시장과 기관 운영 수요관리와의 경쟁을 위해 여러 제도적인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수요관리 시장 참여 국가 전력난제 해법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수요자원을 시장에 참여하도록 해 우리나라 전력 산업의 고질적 문제인 공급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전력 시장에서 공급력은 발전소가 생산한 전력만을 취급했지만, 수요자원 거래시장이 열리면 절전량도 발전소 생산전력과 마찬가지로 예비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당초 개정안은 한국전력 등 국가전력기관이 운영하는 수요 관리에 국가예산이 과도 지출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취지로 발의됐었다. 2011년 9·15 순환정전 이후 전력당국은 전력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수요관리 정책을 펴왔다. 사전에 계약된 대형 사업자에게 절전을 요청하고 그에 해당하는 보상금을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통해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보상금 수준이 실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전력 가격보다 월등히 높아 예산 과다지출과 대기업 특혜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반면에 수요자원이 시장에서 거래되면 발전소 생산전력과 같은 가격구조에서 경쟁하는 만큼 기업 절전 보상금의 과다비용 지출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소 부하 감소로 전체 시장가격 하락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최근에는 국가 에너지 정책이 공급확대 일변도에서 수요관리 비중을 늘리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에너지관리시스템(EMS),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효율화 설비에 투자한 소비자들이 그 보상을 전기요금 절감을 넘어 재화로 팔수 있는 장이 열렸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전원설비는 공급 한계 수준에 와있다. 밀양 송전탑 사태에서 보듯 전원설비를 짓기 위한 신규부지 확보는 어려운 상황이고, 송전망은 더 이상의 발전용량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다. 설비노후화에 따른 리모델링 작업조차 지역주민 반발로 성사되지 못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다. 원전과 증설 발전소 가동으로 지난해 겨울부터 보이고 있는 전력수급 안정세도 공급한계와 수요증가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정부가 에너지 정책 초점을 수요관리로 맞춘 이유다.
신규 발전소를 건설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력효율화를 통해 발전소 증설 효과를 거두는 정부의 정책과 절전량을 시장거래 해 수익화할 수 있는 이번 개정안은 같은 선상에 있는 셈이다. 전력 업계는 수요자원 시장거래가 활성화 될 경우 수조원대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발전소 건설이 줄고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 경제적·사회적 비용 감소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활성화 위해 제도적 보완책 마련 숙제
수요관리 시장거래는 국가 에너지 정책의 변화와 전력시장에서의 민간참여가 늘어난다는 점에서 기대를 받고 있지만, 그만큼 시장 활성화를 위한 많은 숙제도 안고 있다. 안보와 직결된 국가 인프라망에 새로운 제도 도입인 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한 리스크도 크기 때문이다.
가장 큰 숙제는 수요관리 자원의 신뢰성 확보다. 수요관리 사업자는 모집한 회원의 감축 가능한 전력을 한 데 모아 시장에 거래를 한다. 하나의 개체가 약속된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와 달리 여러 회원사가 함께 절전을 해야 하는 만큼 실제 약속한 절전효과를 필요할 때 거두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 수 있다. 전력피크 시 약정 절전량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수급위기, 전력가격 급등과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경쟁의 형평성은 수요관리 사업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사실상 전력시장에 초기 진입하는 입장에서 발전사업자의 생산전력과 동등한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적어도 발전소의 생산전력량과 수요관리 사업자의 절전량을 일정 비율로 혼합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운영하는 규제형 수요관리가 계속 운영되는 것도 부담이다. 철강, 시멘트 등 대규모 절전이 가능한 사업자 대부분은 이미 한전과 전력거래소 회원사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규 수요관리사업자들의 활동을 위해서는 대형 사업자들의 시장지배력을 이용한 시장왜곡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실제 경제성 부분도 논란의 대상이다. 표면적으로는 수요자원 시장거래가 설비건설과 운영이 필요한 발전소보다 경제적으로 보이지만, 원전과 석탄화력과 같은 저원가 발전소에 비해 경제성이 있는지의 여부도 검증이 필요하다. 대형 사업장들이 절전을 위해 조업을 중단하고 예비력을 확보하는 것과, 지역주민 보상을 늘려서라고 대규모 전원설비를 확충하는 것 사이의 경제성 평가도 남은 숙제다.
정부는 수요관리사업자의 단계적인 시장참여를 통해 제도 변화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전력당국 관계자는 “수요자원의 시장참여가 초기부터 충분한 예비전력을 확보하기는 힘들다”며 “시장확대 상황을 감안해 기관 운영 수요관리를 조금씩 줄이는 등 제도변화에 따른 전력수급 리스크를 최소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