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기분에 맞춰 화면색깔과 음향이 바뀌며 생각만으로 채널이나 볼륨을 조작할 수 있는 TV. 졸음이 오면 창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넣어주며, 위험하다 싶으면 경보를 주고 스스로 브레이크를 밟아 옆길에 세우는 자동차. 기분이 좋을 땐 사무실 문을 열고 인사하며 반대일 땐 위로를 해줄 수 있는, 그야말로 인간의 만족을 위해 존재하는 각종 센서와 컴퓨터가 있는 신기한 세상, 이러한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요즘 TV 등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용어중의 하나가 ‘감성’이다. 감성이란 외부의 물리적 자극에 의한 감각, 지각으로부터 인간의 내부에 야기되는 심리적 체험으로 쾌적함, 고급스러움, 불쾌감, 불편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을 말한다.
최근 감성의 중요성을 기업들이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유명 디자이너에게 자신들의 제품을 디자인하게 하고, 제품에 스토리를 만들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소비자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고객의 감성을 자극해 제품에 대한 호의적인 감성 반응을 얻어내고 감동시키는 마케팅 기법인 감성마케팅으로 관심을 받고 있다. 사회 트렌드가 감성시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고 있는 우리 국민들도 향상된 삶의 질을 누리길 원한다. 개인이 실감할 수 있는 향상된 삶이란 편리하고 안전하며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삶이다. 감성공학은 바로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 제품이나 환경 등을 인간중심으로 설계하고 운용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감성공학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망 이미지나 감정을 구체적인 제품설계로 실현해 내는 공학적인 접근 방법으로 인간의 감성을 정성, 정량적으로 측정하고 이를 제품이나 환경설계에 응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보다 편리함과 안전함을 동시에 구현해 인간의 삶을 보다 쾌적하게 하고자 하는 기술이다.
감성을 제품이나 환경에 응용하려면 먼저 감성을 측정해야 하는데 이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뇌파, 심전도, 피부저항 같은 생리신호와 표정, 제스처 등을 측정해 인간의 감성을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연구돼 왔으며 많은 성과가 있었다.
산 계곡에 졸졸 흐르는 시냇물소리, 바닷가의 파도소리 등을 들을 때 사람들은 편안하고 쾌적한 느낌을 가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들은 공통의 규칙성이 있는데 그 바탕을 이루는 것이 ‘1/f의 흔들림’이라는 물리학적인 이론이다.
일본에서는 ‘바이브로랙스(Vibrolax)’라는 침대를 개발하면서 10개의 진동 장치를 침대에 묻어서 시간과 강약을 조절해 파도를 타는 것 같은 진동으로 잠을 잘 들게 하는 ‘1/f의 흔들림’에 근거한 제품을 개발해 인기를 얻은 예가 있다.
감성공학이란 용어는 일본이 1988년 처음 사용했다. 감성공학은 198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시작돼 정부주도로 산〃학〃연이 활발히 연구하고 있고 기업들은 제품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본의 제품이 무언가 소비자의 마음을 끄는 것은 제품에 대한 새로운 소비를 창출하기 우수한 성능과 품질에 더해 이들 제품이 소비자의 감각적 또는 정서적인 욕구까지 만족시키도록 배려하겠다는 노력이 감성공학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MIT는 인간의 감성과 상호 작용하는 ‘키스멧로봇`, 가상캐릭터 ‘얼라이브(ALIVE)`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일찍이 일본에 이어 1995년부터 국가선도기술개발사업(G7 사업)에서 감성공학기술개발 사업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주관하에 산〃학〃연이 함께 8년간 추진했었다.
당시 감성공학이 무엇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너무 일찍이 사업이 추진된 감은 있지만 감성공학기술이 산업계에 확산돼 한국 제품의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21세기는 감성공학 같은 인간중심의 휴먼테크놀로지가 기술을 주도할 것으로 미래학자들은 예견하고 있다. 앞으로 우리도 인간에게 쾌적하고 편리하며 안전한 제품 및 환경 제공을 통해 삶의 질 향상에 직접 기여할 수 있는 감성공학 기술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김철중 KISTI ReSEAT 프로그램 전문연구위원, cjkim47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