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3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3회

2. 너무 오래된 운명

5



황금검이었다. 눈 앞에 놓인 검을 보고도 장건은 믿기 어려웠다. 황금검은 출정의 새벽을 위해 긴장의 식은땀을 흘리는 주인을 기다리는 자세였다.

“용연향의 황금이다. 우리 흉노가 만들었다. 용연향은 우리 흉노의 위대한 처음이자 위대한 마지막 땅이다. 우리는 세상을 멀리 돌아 반드시 그 땅에 도착할 것이다. 자, 냄새를 맡아보라.”

장건은 황금검의 냄새를 맡으려 했다. 발정난 개처럼 콧구멍을 벌렁 킁킁거렸다. 순간 장건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반성도 없을 경거망동이었다.

“하하하.”

군신 선우의 웃음은 모든 흉노인들의 당당한 웃음이기도 했다.

“가장 무서운 적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지금껏 상상할 수 없었던 검의 냄새였다. 피의 냄새도 아니었다. 뼈의 냄새도 아니었다. 소용돌이 초원의 풀이 몸을 터는 냄새, 엄한 폭풍이 몰려오며 아수라를 여는 냄새, 수말과 암컷말의 절정의 교미냄새 그리고 또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늪 속에 빠진 여린 연지꽃냄새, 그 사이사이를 날아다니는 살팍한 먼지냄새, 오로지 사막을 달려가는 붉은 땀 냄새였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승리의 냄새였다.

“황금검의 냄새란 결국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는 냄새였습니다.”

장건은 당장 엎드려 조아렸다. 깔끔한 구걸이었다. 속비치는 구걸이었다.

“저의 목을 베소서.”

군신 선우의 눈빛은 새파랗게 날이 서있었다. 그의 눈빛은 목을 베는 칼이었다.

“당신이 황금검을 보았으니, 절대 흉노의 땅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약속대로 지식을 전수한다면 당신의 목은 내 신의 속에 보관하겠다.”

장건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그는 마치 헛것을 본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비애가 가득한 연기는 군신 선우의 호전성을 잠시 억눌렀다.

“너무 두려워말라. 용연에서 탄생한 황금으로 만든 이 검은 절대 살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장건은 입이 타들어갔다. 혀가 뜨거웠다.

“이 황금검의 주인은 단 한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땅을 정복하고 황금의 제국을 세울 사람이 바로 그 주인이다. 후에 이 황금검의 주인이 이 흉노의 어른 광야에 말을 달려 나타나리라.”

군신 선우는 자신의 차고있던 칼을 장건의 얼굴 앞에 쨍 꽂았다. 검이 무시로 부들부들 떨었다. 하지만 장건은 떨지 않았다. 장건은 입술을 실룩였다. 그는 벌써 비열한 승리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일제는 황금검을 몸에 차고 일을 했고 몸에 차고 잠을 잤다. 매일매일 모조리 베고 찌르는 살육의 치열한 전투를 위해 삶의 허무를 없애버린 경건한 전사였다. 그러나 황금검의 상징성은 초라한 불량배들의 목숨을 궤멸시킬 정도로 강렬했다. 마장의 노예들은 모두 일제의 황금검에 눈독을 들였고 호시탐탐 노렸다. 그날도 일제는 한혈마의 슬픔과 기쁨을 어루만지고, 바로 잠이 들었다. 꿈이 쳐들어왔다.

저쪽에서 묘한 고양이 눈빛을 가진, 회색빛과 호박색빛의 눈동자를 가진 작고 단단한 체구의 그가 한혈마와 한 몸이 되어 그간의 왜소한 역사 전체를 뚫고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높이 쳐들고 있는 황금검은 그간의 왜소한 역사 전체를 횃불로 치솟고 있었다. 또 저쪽이다. 그는 세레스의 능라를 갑옷처럼 걸치고 반인반마의 형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황금검의 불길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이렇게 그들은 서로를 죽일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그들의 말은 방향을 잃은 함대처럼 충돌할 지경이었다. 서로 튕겨져 나갈 것이다. 순간 쨍 하며 검이 서로를 올라탔다. 두 개의 검은 단 하나의 불꽃이 되었다. 두 사람은 단 하나의 거대한 역사가 되었다.

쨍쨍...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