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홀릭] 해저케이블이 쓰이기 시작한 건 지난 1840년대 초. 전신과 전보를 위해 대서양을 가로지른 해저케이블이 처음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해저케이블은 전화나 팩스로도 이용되기 시작했고 이젠 전 세계 해저에 광섬유 케이블이 오가면서 각국에 인터넷을 연결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저케이블을 둘러싸고 냉전이 한창이던 지난 1970년대 미국과 소련 사이에 거듭되는 충돌이 있었던 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1971년 10월 미국 해군의 원자력 잠수함인 USS할리버트(USS Halibut)는 소련군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고 있는 오호츠크해에 침투했다. CIA와 NSA, 미 해군 3개 조직이 지휘한 작전명 아이비벨(Ivy Bells)의 목표는 캄차카반도에 있는 소련 해군 기지와 소련군 태평양 함대를 지휘하는 블라디보스토크 본부 간 통화 내용을 가로채는 것이었다.
USS할리버트는 해저케이블 위치를 찾는 조사를 실시하면서 수심 120m 해저에 소련이 사용하던 해저케이블을 발견한다. 승무원들은 방수 가공 처리한 도청기를 해저케이블에 설치했다. 수신 통화 내용을 도청기에 기록한 미 해군은 이후 10년 동안 매달 도청기에 기록된 통화 내용을 회수해왔다.
당시 해저케이블은 구리선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었다. 소련 해저케이블도 마찬가지였다. 구리는 전자파를 케이블 외부로 방출한다. 미국은 이 점에 착안해 방출되는 전자파를 수신하는 도청기를 개발하고 해저케이블에 접촉시키지 않은 채 통신 기록을 차단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도청 성공에는 소련이 해저케이블 보안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여 통화 기록을 전혀 암호화하지 않았던 것도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981년 개인 부채에 허덕이던 NSA 직원인 로널드 펠턴(Ronald Pelton)은 소련 KGB에 3만 5,000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아이비벨 전략에 대한 정보를 넘긴다. 소련 해군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오호츠크해를 조사하고 해저에서 도청기를 발견한 뒤 회수했다. 당시 발견된 도청기는 현재 모스크바 시내에 전시되고 있다.
정보를 누설한 도널드 펠턴은 미국에서 체포되어 종신형 판결을 받았지만 2015년 석방이 예정되어 있다. 그의 활동 탓에 아이비벨 전략은 끝나버렸지만 미국이 진행한 해저케이블 도청 전략이 아이비벨 하나만 있었던 건 아니다.
미국이 보유하고 있던 원자력잠수함 USS빠르체(USS Parche)는 197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북극해 내 바렌츠해(Barents Sea)를 향했다. 이곳에 소련이 설치한 해저케이블에 도청기를 설치한 것. USS빠르체가 설치한 도청기는 1992년까지 발견되지 않고 성공적으로 실행됐다.
이후에도 미 해군은 USS빠르체를 이용해 해저케이블 도청 전략을 소련 뿐 아니라 유럽에서 북아메리카에 걸친 광범위한 해역에서 실시했다. 이 잠수함은 2004년 퇴역 당시까지 수많은 기밀 작전을 수행해 당시 미국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USS빠르체의 임무를 물려받은 건 새로운 원자력잠수함인 지미카터호(USS SSN_23)다. 이 잠수함은 해군 직원이 해저에서 임무를 수행할 때 선내나 선외 왕래를 지금까지보다 훨씬 간단하게 실행할 수 있는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해저케이블 도청 작전에도 활용도가 훨씬 높다. 또 광섬유 감청 능력도 보유하고 있다.
전 NSA 직원이 에드워드 스노든이 지난해 영국 가디언에 공개한 기밀 서류에는 영국과 미국 첩보기관이 200개 이상 해저케이블을 도청하고 있는 사실이나 방법에 대해 나와 있다. 영국이 도청하고 있는 데이터의 양은 영국국립도서관이 보관중인 1억 5,000만권을 192번 읽은 양에 필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이나 미국의 해저케이블 도청 행위는 각국 정부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브라질의 경우 미국의 도청을 피하기 위해 1억 8,500만 달러를 들여 브라질과 유럽을 잇는 해저케이블을 미국을 새로 설치하겠다고 지난 2월 발표하기도 했다. 전 세계 주요 국가는 영국이나 미국의 도청 행위를 피하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고민을 해저케이블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자신문인터넷 테크홀릭팀
이석원 기자 techhol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