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7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7회

3. 로마의 문(門)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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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다가 방금 사냥을 떠났습니다.”

아틸라의 눈빛이 마른 하늘의 급작스런 번개가 되어 쩌억 갈라졌다. 번개의 비늘이 뚝뚝 떨어졌다.

“몇 명과 떠났느냐?”

“십 여명 입니다. 블레다 일행을 단절시키고 차단시켰습니다. 미리 준비시킨 땅을 벗어나지 못할겁니다.”

에르낙의 꼬장은 블레다의 이승의 무자비한 야만의 삶을 중단시킬 기세였다.

“나 혼자 간다.”

아틸라는 무서울 정도로 무덤덤했다. 그는 전체를 혼자 책임지고자 했다. 그때였다. 콘스탄티우스는 활을, 오에스테스는 짧은 창을, 에데코는 단도를 들고 들어섰다. 그들은 회의(懷疑)도 없었고 조바심도 없었다. 그들은 아틸라의 위대한 황금의 제국의 포함될 매우 단순하고 매우 굳건한 삶과 죽음이었다. 아틸라는 중언부언하지 않았다.

“한 번 휘둘러 쓸어버려라.”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는 자신들의 무기를 앞으로 내밀었다. 호전성과 충성심이 결합된 전사의 비애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멀리 따르라.”

에르낙의 오른쪽 뺨, 앙상한 허연뼈에서 피가 싸늘히 번졌다. 피의 냄새는 찐했다. 그가 지나치게 긴장했다는 증거였다.

“느닷없는 자손의 역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신라에서 황금검이 이미 출발했다. 나와 미사흔은 서로 어딘가에서 만날 것이다. 분명한건 우리는 로마의 문을 열고 로마의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어딘가에서 나와 그는 만날 것이다.”

아틸라의 장쾌함에 에르낙이 얄미롭게 끼어들었다.

“왕자님.”

에르낙은 실로 오랜만에 사무치게 불렀다. 에르낙의 거덜난 심기를 느꼈음에도 아틸라는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마음길을 통제할 사람은 없었다. 오로지 그 자신만이 스스로를 완전하게 다스렸다. 그는 시대의 벌판을 나서게 될 독종 중의 독종이었다.

“그런데...저어, 블레다...”

에르낙이 더듬거리는 것은 아틸라의 개인사와 분명 관련있는 것이었다. 아틸라는 뭔가 집히는 것이 있는지 에르낙의 목을 획 돌려 잡아올렸다.

“말해.”

“힐다 아가씨를 데리고 갔습니다.”

냉정한 아틸라였지만 그 또한 한 여자를 사랑하는 평범한 남자이기도 했다.

“아틸라 왕자님을 자극하려는 술책입니다. 걸려들면 절대 안됩니다.”

에르낙은 목을 잡힌 바람에, 임종을 앞둔 노인네처럼 갸륵거렸다.

“아니. 걸려들 예정이다.”

아틸라는 에르낙을 툭 놓았다. 오에스테스는 힘이 불끈불끈 넘쳐났다. 그의 덩치와 어울렸다.

“오히려 잘되었습니다. 모두가 블레다의 최후가 야만적인 정욕 때문에 그런거라고...떠들어댈겁니다. 하하.”

에데코가 단도를 빙그르 돌리면서 그를 놀렸다.

“제발 소리 좀 낮춰. 불알 두알 홀라당 까고 자던 미친개도 듣겠어. 그놈의 목소리는 뭘 먹고 저리 됐는지. 힘이 넘치면 좀 빼고오지. 어젯밤 뭐했어? 잠만 잤어?”

오에스테스, 에데코 모두 큼큼 웃었다.

“아틸라의 계략 속에 블레다의 계략이 숨어있다, 해볼만 하다.”

아틸라의 자아는 자신도 모르게 구도자의 자세일지 몰랐다. 그는 밝음도 어둠도 존재하지 않는 남자로 보였다. 콘스탄티우스는 태생이 노력없는 긍정과 여유가 넘쳤다.

“오히려 블레다가 아틸라 왕자님에게 정당성을 선물해 주는군요.”

아틸라는 투구도 없이 갑옷도 없이 나섰다. 에르낙이 앞을 막아섰다.

“의복을 갖추십시오.”

“난 지금 적을 무찌르는 전사로서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려는 한 남자로서 가는 것이다. 그러니 무장은 필요없다. 그것은 비겁해 보일 수 있다.”

아틸라의 눈빛에서 다시 한 번 마른 번개가 찌릿했다. 에르낙이 두려움에 더 이상 입을 닫았다.

“말.”

말발굽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벌써 말이 달리는 주변의 공기가 쉿쉿 소리를 내며 휘둘리고 있었다. 밖은 아직 캄캄했다.

쉿쉿 어찌 사람이 내는 소리같았다. 이 소리를 듣고 사막으로 무작정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었다. 미사흔이 도착한 곳은 바로 명사산(鳴沙山) 근처였다.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미사흔과 에첼 그리고 선도의 아이들은 은밀히 이동하며 이곳까지 왔지만, 신라를 떠날 때부터 거친 말발굽소리를 내며 따라붙던 사냥꾼들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아마도 그들의 무리한 충(忠)을 완수하기 전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으리라.

“아까부터 바짝 따라붙었습니다.”

선도의 아이들은 다섯이 따라왔다. 미사흔은 그들을 오형제라 불렀다. 오형제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관수, 단 한 아이만 말했다.

“명사산이 내는 소리인가? 사냥꾼이 내는 소리인가?”

미사흔은 절로 한숨이 나왔다.

쉿쉿 소리는 점점 질풍노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