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0화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0화

3. 로마의 문(門)을 열다

4



아틸라는 혼자 말을 달렸다. 그러나 블레다의 매복에 쉽게 걸렸다. 이미 수 십의 블레다의 전사가 아틸라를 둘러쌓다. 아틸라는 말을 차분히 멈추었다.

“고작 멧돼지 한 마리라니. 하하. 멧돼지 한 마리로 나를 계략속으로 빠트릴 셈이었다니. 내가 그렇게 미련하지 않다.”

블레다는 고단함을 모르는 오만함이 똘똘 뭉쳐있었다.

“난, 블레다 형님의 계략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아틸라의 머리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아직도 큰소리지만 곧 너의 목을 내가 가져갈 것이다. 세상에 제왕은 하나다.”

블레다는 미친듯이 웃어제꼈다. 위글과 함께 끼륵끼륵 거렸다. 괴이했다.

“자신의 여인을 지키려는 남자가 어찌 수 십명을 대동하고 오겠습니까?”

블레다가 눈을 꿈뻑거렸다. 널부러진 멧돼지같았다.

“오호, 그랬군. 네 여자를 지키다 죽는 것이 되겠구나. 그것도 좋다, 데려와라.”

힐다는 헐벗은 몸땡이로 끌려왔다. 힐다는 아틸라를 보자마자 눈물부터 펑펑 흘렸다. 힐다는 말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 말못하는 여자의 처절한 눈물이었다. 아틸라는 눈길 한 번 슬쩍 주었을 뿐이다. 차가웠다.

블레다의 수 십의 전사들이 아틸라를 에워쌌다. 아틸라는 움직임이 없었다. 아틸라는 블레다의 전사들을 의식하지 않고 힐다를 향해 걸어갔다. 아틸라는 힐다를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를 꼭 껴안았다. 무언가 속삭였다. 힐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틸라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아틸라를 향해 눈물을 흘렸다. 순간 아틸라가 힐다의 목을 짧게 그었다. 블레다의 전사들은 놀란 나머지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자신의 무기를 놓친 자들도 있었다.

“차라리 내 손에 죽으라. 저자는 이제 제왕이 아니다.”

“뭐라고?”

블레다가 죽어가는 멧돼지 소리를 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순간, 어딘가에서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가 말을 타고 나타났다. 그들은 수 십의 블레다의 전사들을 에워쌓다,.

“아틸라의 계략 속에 블레다의 계략!”

아틸라가 읊조렸다.

“세 놈이 수 십을?”

블레다는 픽 웃었지만 사실 발버둥했다. 그들이 누군지 너무나 잘알기 때문이었다.

콘스탄티우스가 그의 등 뒤에서 복각궁을 꺼내었다. 그는 복각궁의 달인이었다. 그가 말을 탄 채 활을 들고 둥글게 회전했다. 몸통과 머리가 반대방향이었다. 그는 등자를 밟고 말 위에 서있었다. 오에스테스의 창은 휘는 창이었다. 그의 휘는 창은 던지면 여럿의 목을 베고 주인에게 다시 돌아왔다. 에데코의 단검은 하나가 아니었다. 그의 소매 깃에서 십 여개가 줄줄이 밀려나왔다. 에데코는 십여 개의 단도를 한꺼번에 빙빙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였다. 블레다의 전사 수 십의 머리통은 없어지고 몸통만 남아있었다. 블레다는 자칫 넘어질 뻔했다.

“난 느닷없는 자손이다. 오늘 나의 역사를 시작하겠다.”

아틸라는 어리둥절해 있는 블레다의 머리통을 강하게 찍어내렸다. 아틸라는 그의 칼 끝에 블레다의 모가지를 꽂고 힘차게 흔들었다. 모두 눈물을 흘렸다.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와 그의 어린아들 오도아케르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왕 아틸라.”

아틸라는 핏줄이 펄펄 뛰는 눈빛으로 새로운 역사의 장(章)을 찢고있었다.

미사흔과 에첼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끝이 분명히 있을거라는 믿음만이 있었다.

“황금검이 길을 안내할 것입니다. 그저 마음 가는대로 가십시오. 그가 이미 문을 열었습니다.”

미사흔은 생전 처음으로 자유로움과 환희를 느꼈다. 그는 정치적인 희생양이 되어 왜(倭)에 오랫동안 볼모로 잡혀 감시당하며 살았다. 또 자신을 볼모에서 구해준 박제상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그의 딸과 결혼을 올렸다. 미사흔의 마음은 이제 원대한 꿈을 향해 날고 있었다. 진짜 사나이의 마음이었다. 그는 억압을 떨쳐버렸다.

“나는 위대한 제국을 건설하는 신라의 왕이다. 신라인들에게도 알릴 것이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말달리고 싸웠는지,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경망스런 말발굽소리가 다시 뒤를 쫒았다.

“오형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에첼은 아직 불안했다. 미사흔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운명의 검을 갖고 있고 아직 그 끝에 도달하지 않았다. 아직 아무도 죽을 수 없다. 다시 만날 것이다. 가자.”

미사흔과 에첼은 능라를 뒤집어썼다. 가까운 곳에서 화살이 마구 쏟아졌다. 그러나 화살은 능라를 맞고 튕겨져나갔다.

“세레스의 깃발이다. 세레스의 깃발.”

멀리서보면 미사흔과 에첼은 하나의 황금검이었다. 그 황금검이 밤의 황금사막을 날고있었다.

“로마, 로마, 로마.”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