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버즈]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우리는 흔히 명함을 건넨다. 담고 있는 정보는 이름과 회사명, 전화번호, 메일, 홈페이지 등 유사하지만 똑 같은 명함이라고 해서 운명도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명합집에 고이 보관되고, 또 어떤 것은 쓰레기통으로 직행하는 것이 현실이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아날로그엔진의 명함은 인상적이다. 한 번 보게 되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빼어난 디자인 속에는 필수정보 이상의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담고 있다.
지금은 바야흐로 자기 PR의 시대. 작은 명함 속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아날로그엔진의 장미지 대표를 만나 이번엔 그녀 본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경험, 실패해도 플러스?
가로 세로 9cm x 5cm의 작은 캔버스 안에 하나의 예술 작품이 펼쳐진다. 아날로그엔진의 명함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직업적 특징을 드러낼 수 있는 타이포나 오브제, 얼굴 일러스트, 레이스 형태 등 종류가 무척이나 다양하다. 주된 방식은 레이저 펀칭이다. 즉 명함에 구멍을 뚫어 개성을 드러내는 것인데, 그중에서 단연 인기 있는 상품은 전체 주문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레이스형이다.
“마음속엔 이순신이 백 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레이스 디자인 할 때는 제가 막 캔디가 된 것 같아서 저도 놀래요(웃음)”

장 대표는 대학에서 디자인은 전공했다. 그림 그리고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안 해본 디자인이 없을 정도. 아니, 사실 그것 외에도 해본 것이 너무 많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탁구공에 그림을 그려넣은 캐릭터 휴대폰 악세사리를 팔았어요. 계란 판에 놓고 나 30개, 친구 30개 총 60개 놓고 시작했는데 엄청 잘 팔려 몇 달 만에 몇 천을 벌었어요. 헌데 얼마못가 카피 제품이 등장했고 사업을 접게 됐죠. 그때는 사회도 모르고, 제작도 모르고, 작가 마인드까지 있어가지고 똑같은 건 안한다 해버렸어요(웃음)”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그림을 그리겠다며 돌연 작가생활을 선언했다가 접고, 도자기 악세사리로 유명 디자인 편집샵 입점. 하지만 피드백이 느려 다시 접고, 새마을식당의 백종원 성공신화에 꽂혀 칼국수 사업 시작. 여기에 중간중간 디자인 회사에서의 피 터지는 경험까지…….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엄청난 경험담이 쏟아져 나온다.
“칼국수 장사는 장사가 잘됐어요. 권리금도 다 값고 밑지지 않았죠. 헌데 그 일을 즐길 수가 없었요. 그때 저는 서비스업이란 게 얼마나 전문적인 일인지 간과했죠. 돌고 돌았지만 디자인을 하는 게 훨씬 재미있었어요. 애초에 떠난 것도 디자인이 싫어서라기 보단 디자인에 대한 처우가 싫어서이기도 했고요”
누군가는 끈기 없다며 흉볼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기 입으로 끈기가 없다고 인정해버리고 만다.
“해보고 싶은 건 해야 한이 안 남아요. 왜냐면 인생의 기회는 한 번이 아니거든요. 리스크를 감당할 자세가 돼있고 경쟁력 있는 아이템이 있다면 뛰어들어야 해요. 자기 성향을 객관화해서 바라보고, 알고, 부딪히면 실패해도 그건 플러스라고 봅니다. 그 경험을 종합한 게 제가 되는 거고.”
이야기를 듣다보니 말 한마디, 한마디에 확신이 느껴져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아마도 호랑이 기질을 타고 태어난 천상 사업가 체질인 듯하다.
◆명함은 개인의 강력한 광고매체
그런데 다양한 종류의 디자인 중에 왜 하필 명함이었을까? 잡지, 신문, 책 등의 편집디자인. 여기에 패션, 가전, 주얼리, 공예 등 우리 일상에 디자인이 개입하지 않은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운데 말이다.
“싸고 대량으로 생산하는 건 자본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건 프리미엄의 커스터 마이징 (Customizing: 주문제작) 서비스였어요. 그러려면 가격대가 다소 올라갈 수밖에 없는데 국내 인구는 너무 적게 느껴졌어요. 그때 명함이 떠오르더라고요. 무게가 가벼워 배송도 쉽고, 글씨가 별로 들어가지 않으니까. 이거라면 강펀치로 다운은 못시켜도 강한 쨉은 날려볼 수 있겠다 싶었죠”
하지만 현실적인 부분만 고려했다고 보기엔 디자인에서 묻어 나오는 기발함과 독창성이 예사롭지 않다. 명함 곳곳에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지문처럼 묻어있다. 문득 그녀가 생각하는 명함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졌다.
“몇 백개의 명함을 보다보면 그 사람이 누군지 모두 기억할 수 있을까요? 명함은 좁게 보면 개인정보를 수록한 것이지만 내 손을 떠나는 순간 하나의 광고매체가 되요. 유니크한 명함은 하나의 힘입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야든 경쟁은 치열해요. 적어도 일대일로 직접 스친 관계라면 날 선택하게 만들어야죠”
명함이란 건 본래 밖에 나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민들레 홀씨처럼 뻗어나간다. 그것이 걸어 다니는 아날로그엔진의 광고판이 되어주고 있다. "어머, 예쁘다. 이 명함 어디서 했어요?" 묻다 보면 저절로 아날로그엔진에 닿게 되는 식이다. 명함을 레이저 작업한 다는 건 무척이나 세밀하고 전문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일반 명함에 비해서는 가격대가 높다. 200장에 10만 원 정도. 다른 곳에서 똑같이 해달라 의뢰하면 20만 원이 훌쩍 뛰어넘기 때문에 고객의 상당수가 가격에 대한 불만은 없는 편이다. 아날로그엔진은 디자인과 동시에 공정을 위한 레이저 컷팅기, 초고급지 소재를 대량으로 구비해둬 서비스에 최적화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아래는 아날로그엔진의 명함들이다.


기자란 직업엔 어떤 명함이 어울릴 것 같느냐고 물으니 “펜?마이크? 너무 뻔한가?”하며 이내 웃음을 터트린다.
회사는 올 하반기까지 중국의 타오바오닷컴을 시작으로 영미권 사이트를 개설하며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최종 목표는 세계인이 아날로그엔진의 명함을 알게 되는 것이라고. 글쎄, 당장은 힘든 일이겠지만 10년 뒤 쯤이면 꼭 꿈같은 일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