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버즈] 티백에 물을 부으니 주홍의 고운 빛깔이 흩날리듯 퍼져나간다. 마셔보니 홍차 특유의 향은 그대로면서 쓰고 떫은 끝 맛은 달콤함으로 바뀌었다. 입맛은 제각각이라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편하게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이름은 나를 사랑한다는 뜻의 나애(愛)차. 좋은 성분이 녹아있어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들고, 심적 여유까지 가져다준다.
나애차는 녹차와 홍차에 감귤꽃 향이 베어들도록 차엽과 꽃을 혼합해 가공한 화(花)차로 최근 2030 여성을 중심을 입소문을 타고 있다. 만든 이는 푸르메다의 석보영 대표. 그녀를 직접 만나 차를 개발하게 된 과정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녹차와 홍차, 감귤꽃 만나 ‘확’ 변하다
성인 1인당 평균 커피 소비량은 한 해 기준 300잔. 그에 반해 녹차는 100g에 불과하다. 그만큼 국내 차 시장은 현재 침체기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당장 주위를 둘러봐도 실감할 수 있는데,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은 봤어도 차를 들고 있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커피같은 경우엔 소비자 니즈를 파악해 매우 다양한 제품군을 구성했어요. 하지만 차 쪽은 농사만 열심히 지을 뿐 그러지 못했죠. 만일 소비자가 맛이 써서 싫다고 하면 차를 만드는 제다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요즘 입맛을 맞출까 고민해야 하고, 성분 자체의 문제라면 기능적인 것을 첨가해 그걸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농촌의 현실상 그런 것들을 병행하기란 불가능에 가깝죠”
석보영 대표는 지난 15년 간 동서식품을 비롯해 다양한 회사에서 차 패키지 디자인을 해온 베테랑 디자이너다. 관심이 디자인에만 머물 수도 있었지만, 농촌에서 나고 자란 석 대표는 자꾸만 다른 것들이 눈에 보였다. 누군가 시도하면 뭔가 바뀔 수도 있을 것이란 안타까움이 컸다. 이후 대학원에 진학해 틈틈이 차에 대해 연구했다. 목적은 단순했다. 녹차 시장을 키워보자는 것. 그 결과 감귤꽃을 머금은 화차가 탄생했다.
제품의 종류는 나애녹차와 나애홍차 두 가지다. 차 성분이 지니고 있는 지방분해, 함암 효과에 감귤꽃이 갖고 있는 항알러지 효능이 합쳐져 맛뿐만 아니라 기능 면에서도 더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두 가지 모두 맛보았는데, 나애녹차는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 느껴졌고, 나애홍차는 이보다 달콤한 풍미가 느껴졌다.
차 우리는 방법에 정석이 있느냐고 물으니 석 대표는 입맛과 성격 따라 마음대로 마시면 된다는 다소 털털한 답변을 내놓는다.
“기본적으로 김이 한 번 나가고 차를 우리면 맛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기다릴 수 있는 성격의 소유자 아니에요(웃음) 저도 15년간 회사 다니며 팀장, 아내, 엄마 등의 여러 역할을 하다 보니 성격이 굉장히 급해졌어요. 나애차는 팔팔 끓는 물에 넣고 마셔도 되고요 회의 끝나고 식은 다음에 먹어도 되는 편리한 차에요”
기존의 차들이 진득하게 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소비자를 기다렸다면, 나애차는 마시는 방법뿐만 아니라 맛 또한 요즘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는 셈이다.
◆농가와의 `상생` 실천…과정이 아름다운 나애차

그런데 왜 하필 감귤꽃이었을까?
“우연히 신문을 보다 감귤 나무가 수익이 안돼 베어진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감귤 나무의 경우 생산량 조절을 위한 꽃 솎기를 해야 해요. 그때 생각했죠. 거기에 드는 인권비는 제가 내 농가의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버려지는 다량의 꽃을 확보하고, 농민들은 남은 꽃에서 나는 열매를 가지고. 이것이 상생이 아닐까 생각 했어요”
이후 석 대표는 7~8년 간 차밭을 오가며 나애홍차와 나애녹차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농민들의 노고를 가까이서 지켜보게 됐다고.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그녀는 차의 대중화와 더불어 하나의 꿈을 더 갖게 됐다. 농가와의 상생과 협력이 바로 그것이다.
“언젠가 차를 만들고 있는 데 노부부가 오셔서 ‘보영이 니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래야 우리가 좀 더 차를 팔 수 있지 않겠니’하는 말씀을 하세요. 저도 근 10년 간 차밭을 오가며 그네들이 힘들게 일하는 모습을 보아왔어요. 그것에 대한 정당한 값은 지불해야하지 않는 생각을 했어요. ‘얼마에 주세요’가 아니라 ‘얼마까지 가능 하겠어요’라고 말이에요”
물론 사업이 점차 커지면서 한해한해 어려움이 닥칠 때도 있지만, 나애차 개발에 협력과 도움을 준 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이러한 가치를 지켜나가고 싶다는 게 석 대표의 뜻이다.
푸르메다는 지난해 문을 연 신생회사지만 성장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나애차는 지난 3월부터 2030 여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CJ 올리브영’에 입점했다. 6월엔 생협 쪽에 푸르메다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녹차와 현미녹차를 판매하고 있다. 향후 백화점, 면세점 등으로 유통채널을 넓혀나갈 생각이다.
회사의 최종목표에 대해 물으니 ‘한국의 자연을 담은 차’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석대표는 “제주도, 지리산, 안동, 보성 등으로 조각조각 나누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자연을 차로 담아내고 싶어요. 그 속에서 제 욕심만 차리는 것이 아니라 ‘함께’를 실천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길.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이 결정 되었다는 석 대표의 문자를 받았다. 상품 만드는 과정이 아름다운 기업 푸르메다가 `수익`이 아닌 `가치`를 우선 삼는 기업들의 희망의 증거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한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