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말 기준 연매출이 1000억원 이상 ‘벤처 1000억 기업’이 전년 대비 9.1%(38개사) 늘어난 454개사로 조사됐다. 처음 조사를 실시한 2005년에 비해 6배 이상 증가했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매출 1000억원 이상을 올린 역량 있는 기업군이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가진다.
벤처 1000억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을 보면 8.2%로 대기업(0.6%)과 일반 중소기업(4.6)을 크게 앞서는 높은 성장성을 지녔다. 전체 벤처 1000억 기업의 총매출액은 약 101조원으로 GDP의 7.1%를 차지하며, 이는 삼성, SK, 현대차, LG에 이은 다섯 번째 그룹규모에 해당된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환경변화에 신속한 대응력을 무장한 벤처 1000억 기업의 성장은 고용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들의 전체 고용 인력은 약 16만6000명이며, 고용증가율도 대기업과 중소제조업보다 높아서 ‘고용 없는 경제성장’을 해소하는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벤처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해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벤처기업들은 IMF 등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으며 지금도 우리 경제를 든든히 받쳐주는 버팀목 역할을 톡톡해내고 있다.
이들의 성공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글로벌 시장에 과감하게 도전했던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벤처 1000억 기업 중 80.5%가 해외에 직접 수출을 하고 있으며, 기업당 평균 수출액은 587억원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서도 기술력으로 무장한 벤처기업이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시장에서도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있다.
예를 들면 2008년에 설립된 무선주파수 솔루션 업체 Y사는 일본 무라타 등이 장악한 SAW필터 시장에서 우리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글로벌 3~4위에서 더 큰 도약을 위해 노력 중이다. 카메라 구성장치를 제조하는 N사는 2004년 설립 이후 세계 최소형 3.5㎜ CMOS카메라 모듈 자체 개발에 성공했으며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부상했다. 벤처 1000억 기업들은 선진기술을 모방하던 패스트 팔로어에서 벤처정신으로 무장해 기술국산화에 성공한 뒤 이제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무버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처 1000억 기업 증가율은 2012년부터 다소 둔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글로벌 경기 위축으로 인한 경제상황 반영과 함께 2000년대 초반 반(反)벤처 정서 여파로 인해 상당 기간 벤처창업이 위축됐던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벤처 1000억 기업 달성기간은 평균 16.8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 벤처 1000억 기업의 성과는 1990년대 말 우수 인력의 벤처창업에 대한 도전과 노력의 산물임을 확인할 수 있다. 미래의 우리 경제가 선진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지금 다시 한 번 범국가적 차원에서 기업가정신을 제고함으로써 벤처창업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벤처 1000억 기업은 이제 양적 확대를 넘어서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도약해야 하는 더욱 큰 과제를 안고 있다. 벤처 1000억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그간 성장과정과 향후 전략을 면밀하고 체계적으로 연구해 적합한 지원대책을 짜야 하고, 벤처 1000억 기업도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변화와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재무구조 개선, 중소·벤처기업과 공정한 거래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등 글로벌 기업으로서 성숙된 기업의식도 함께 성장해야 한다.
우리 벤처 생태계도 개별 주체들의 자발적인 노력과 함께 선도벤처기업이 후배벤처 창업자의 롤 모델로서 축적된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문화 확산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최근 ‘벤처 1000억 청년창업 멘토링 지원단’이 발족돼 후배 양성을 위한 경험 전수와 재투자를 다짐하고 나섰다. 앞으로 훌륭한 후배 벤처기업인들이 자라날 수 있는 선순환의 벤처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가 크다.
창조경제의 핵심인 벤처생태계 복원을 위해 정부가 벤처기업 육성과 창업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 발표하고 벤처·창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벤처 1000억 기업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졌다. 이들이 걸어온 발자취는 우리나라 벤처의 역사고, 후배 창업자에게는 희망과 비전이며, 벤처인에게는 자긍심과 자신감의 상징이다. 벤처 1000억 기업이 대한민국 벤처에 르네상스를 불러오고, 세계시장을 선도할 행보를 벌일 것을 기대해본다.
손광희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 khson@kov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