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로마의 문을 열다
7
콘스탄티우스는 얼굴의 침을 닦았다. 웃었다.
“콘스탄티우스, 그리스인이 야만인들 속에서 용케도 살아남았군, 말고기롤 무릎에 올려놓고 손으로 쭉쭉 찢어먹는다지? 허허, 질긴 말고기의 피냄새가 나는구만. 이제 영락없이 야만인이 되버렸네. 자네의 야만인 왕은 어디 있나?”
콘스탄티우스는 안쓰러운 짓거리에 놀아나지 않았다.
“이제 곧 나오실거네. 로마인들은 고개를 반만 돌려도 배신하는 자들이라 처소에 들이지 않으니 이해하게.”
로마 사신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때 아틸라가 나타났다. 로마사신은 그를 보자마자 굳어졌다. 실제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주절주절 소문만 들었을 뿐이었다. 언뜻 자신보다 훨씬 작고 못생기고 보잘것 없어 보였지만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과 카리스마가 존재하고 있었다. 아무 이유 없이 무릎을 꿇을 뻔 했다. 정신이 아찔했다.
‘아틸라는 제왕이 맞다.’
로마 사신의 마음은 이미 여러 번 굴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로마를 그냥 바치겠다고 온 것이 아니라면 너의 목은 이곳에 남게 될 것이다.”
로마 사신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칼의 진한 베임보다 고통스러웠다.
“호노리아 공주님이 보내셨습니다.”
그러자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가 깔깔 웃었다. 에데코는 로마 사신 면전에 위태롭게 웃어제꼈다.
“그 바람둥이 공주가 왜? 자신의 친위병과 바람이 나서 아들까지 낳았다더니? 천하의 색녀가 이제 그 친위병마저 성에 안차는건가? 이제 아틸라 제왕님이 밤에 필요한거야? 하하하.”
에데코는 순간 자신의 단도 십여 자루를 그의 말을 향해 던졌다. 말이 비명소리 없이 그대로 주저앉았다.
“다음엔 네 목이다.”
오에스테스의 아들, 오도아케르는 이제 청년이 되어있었다. 사색이 되어 이승과 저승을 오고가고 있는 로마 사신을 향해 이제 장난질까지 했다.
“제가 상대해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로마는 우리 땅이 될 것인데, 로마의 공주를 품에 안은들 누가 뭐라겠습니까?”
로마 사신은 자신을 자꾸 벼랑으로 내모는 무질서를 감당하지 못하고 아틸라에게 얼른 물건을 건넸다.
에첼의 눈빛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복호는 아무렇지 않게 미사흔이 보는 앞에서 에첼을 겁탈했다.
“기련산을 두고가니 가축을 기를 수가 없네요
연지산을 두고 가니 여인들은 아름다움을 잃었네요
다시 돌아오지 못하나요?
우리는 어디로 가는걸까요?“
에첼은 작은 새가 되어 노래했다. 그리고 차례로 그의 부하들이 에첼을 겁탈했다. 굴욕의 시간이 끝나고, 복호가 돌아갔다. 황금검을 가져갔다.
에첼은 만신창이의 몸으로 일어났다. 그녀의 아랫도리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돌보기 전에 미사흔을 풀어주었다.
“저는 신라로 돌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의 머리통을 내가 찍어올릴겁니다.”
에첼은 벌거벗은 채 벌써 노도(怒濤)를 예비하고 있었다.
아틸라가 건네받은 것은 황금능라로 감싼 작은 상자였다.
“로마도 세레스의 능라를 쓰는가?”
아틸라는 상자를 조심히 열었다. 황금반지였다. 굵은 반지였다. 의외였다.
“황금반지라?”
아틸라는 황금반지에 즉각 의심을 드러냈다. 주위의 시선도 뱀의 두 갈래로 찢어진 혀처럼 독기가 올랐다. 로마 사신은 주위의 눈치를 보며 정중히 말했다.
“호노리아 공주님께서 아틸라 제왕님께 청혼을 하신겁니다.”
그러자 훈의 전사들이 휘파람을 불고 헹가레를 돌렸다. 그들은 평생 전장터만 돌아다니며 먹을 것과 여자를 구해오던 기적의 사나이들이었다.
“로마의 공주까지 스스로 몸땡이를 바친다면, 로마의 여인들도 스스로 우리에게 달려올 것이다.”
훈의 전사들은 여자를 맞아들이기 전,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성기를 까서 보여주는 놈들도 있었다.
둥둥 땅을 흔들고 나타난 것은 선도의 아이들, 오형제였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