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4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24회

3. 로마의 문을 열다.

8



그들은 미사흔과 에첼의 꼴을 보고는 아연실색했다.

“저희가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저희가 속았습니다. 엉뚱한 곳으로 그들을 쫒는 동안 왕자님과 에첼 아가씨가 당하신겁니다. 저희들이 미숙했습니다.”

오형제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아이일 때부터 전사로 훈련받고 살았지만 아직은 어렸다. 아직 턱 주변으로 솜털만 보송했다. 진짜 턱수염은 나지도 않았다. 아마 그곳의 털도 드문드문 하리라. 머언 이국의 땅, 한 번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이곳에 와서, 첫 좌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위로하기에도 서러웠다.

“황금검은 이미 내 손을 떠났다.”

미사흔은 이 말을 하기 그토록 어려웠다. 마음 속에 세상의 모든 먼지가 내려앉은 듯 했다.

오형제는 눈을 부릅떴다. 오형제는 부르르 떨었다.

“황금검을 반드시 찾겠습니다. 반드시.”

미사흔과 에첼은 그제서야 옷을 입었다. 에첼의 아랫도리 피의 흔적은 참혹함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들은 다시 신라로 돌아가고 있을겁니다.”

오형제는 눈길을 돌렸다. 이건 실제였다. 꿈이 아니었다.

“아니다. 그들은 신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미사흔은 오형제를 모두 품에 안았다.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내가 안다. 이제부터 내가 진짜 왕이 되겠다.”



신라에서는 왕 눌지의 자리는 위태위태했다. 왕 눌지는 미추 이사금의 아들로 미추 이사금은 김알지(김-金, Gold 알-흉노의 ‘알’은 金, Gold)의 후손이었고, 김알지는 또 투후 김일제의 후손이었다. 왕 눌지는, 진짜 순혈이었던 것이다.

그가 시조묘에 제사를 지내던 날에 지진이 일어나 금인상(金人像)이 쓰러지고 금성(金城)남문이 무너졌다. 또 커다란 바람이 불어 큰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나가기도 했다. 그동안 신라의 마립간을 배출해 온 박씨와 석씨 가문들은 이런 변고가 하늘의 노함이라고 했다. 김씨가 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들은 백성들을 동요시켰고 또 왕자 미사흔이 황금검을 갖고 신라를 탈출했다는 것으로 왕 눌지를 탄핵하려 했다. 이 모든 정치적갈등의 중심에는 사실, 왕 눌지의 부인이 있었다. 아로부인은 실성왕의 딸로, 남편인 왕 눌지가 그녀의 아버지 실성왕을 죽였기 때문이다. 아로부인과 박씨, 석씨 일당은 그 황금검을 가진 자가 신라에서 김씨 왕을 몰아낼 수 있다고 미련하게 믿었다. 그들은 작은 우물 안에서 대가리가 터졌다.

왕 눌지는 백성을 지켜야 했다. 나라의 패권을 둘러싼 정쟁이 치열할수록 백성의 삶은 궁핍해지가 마련이었다. 백성들은 소나무껍질을 벗겨먹고 있었다. 왕 눌지는, 미사흔을 죽이기로 결심했다.

“서로마 제국의 호노리아 공주가 나에게 청혼을 하다니? 이미 모반을 획책하다가 동로마의 수도원에 갇혀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닌가? 말해 보라.”

아틸라는 절대 소리를 높이는 적이 없었다. 그의 눈빛은 빠르게 상대를 파악하려고 재빨리 움직였지만, 한 번이면 족했다.

“아직 수도원에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럼?”

“알고 계신대로, 호노리아 공주님은 직접 낳으신 아들의 아버지를 황제로 추대하려 하셨지만, 동생이신 발렌티니아누스 황제와 어머니이신 플라키디아 황후의 노여움을 사셨습니다.”

“그래서?”

"현재 공주님은 동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께 볼모로 잡혀있습니다. 만약, 아틸라 제왕님께서 호노리아 공주님과 결혼하시어, 동로마에서 탈출시켜 주신다면...“

“그렇게 한다면?”

잠시 말이 없었다. 아틸라와 로마 사신을 지켜보는 이들은 침도 삼키지 못했다. 로마가 저절로 굴러들어오고 있었다.

“서로마 제국의 절반을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아틸라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그러나 아틸라만은 웃음도 없었다. 그의 표정은 오히려 더욱 서늘해져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 말을 믿지?”

로마 사신은 그에게 서신을 건네었다. 서신은 서로마제국의 왕가(王家) 인장이 찍혀있었다. 아틸라는 서신을 읽어내려갔다. 그는 로마 궁정에서 볼모생활을 오래했기 때문에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능통했다.

아틸라는 서신을 끝까지 읽고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

“기다려라.”

아틸라는 성긴 숲속의 듬성듬성 무덤 쪽으로 갔다. 유난히 하얀꽃이 피어난 무덤이 하나 있었다. 아틸라는 무덤을 쓸어만졌다.

“힐다.”

아틸라는 짧게 이름을 불렀다.

“내가 너의 목을 거두었다. 내가 사랑했기 때문이다. 나의 여자로 살았고 나의 여자로 죽었고 앞으로 내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의 여자로 계속 살아라. 나에겐 힐다 너 밖에 없다.”

아틸라는 성긴 숲에서 깊은 밤이 되어서야 내려왔다. 그의 눈빛이 더욱 성성했다. 하늘의 모든 별빛이 내려앉은 눈빛이었다.

로마 사신은 무릎을 꿇었다. 로마의 황제에게나 할 법한 예의였다.

“나는 호노리아 공주와 결혼할 것이다. 나에게 서로마 제국 절반을 달라.”

로마 사신은 일어나서 존경을 담아 인사를 했다.

로마 사신들이 돌아가고, 에르낙이 먼저 무릎을 꿇었다. 콘스탄티우스가 무릎을 꿇었다. 오에스테스가 무릎을 꿇었다. 에데코가 무릎을 꿇었다. 오도아케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그들이 거짓으로 우리를 농락한다면 제가 반드시 그 복수를 하도록 해주십시오.”

오도아케르도 아틸라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추었다.

아틸라는 그의 머리를 강하게 찍어 눌렀다. 그건 강한 인정이었다.

“로마의 절반이 들어왔습니다.”

“로마, 로마, 로마.”

훈의 전사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외치고 있었다. 대 중원의 변방에서 떠았다. 대 중원을 흔들었다. 또 여러 번의 부침으로 연지산과 기련산을 두고 떠나온 흉노였다. 그들은 절대 흩어지지 않고 만나는 부족들마다 자신들의 세력 속에 품으며 서유럽 일대를 맹렬하게 먹어가고 있었다. 찌르는 함성같은 전설이었다. 위험한 족속, 진짜 훈이었다.

“이제 로마의 문(門)이 열렸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