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신화로 성공가도를 달려온 팬택이 결국 법정관리 절차를 다시 밟게 됐다.
팬택은 12일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이사회를 열고 만장일치로 법정관리 신청안을 통과시켰다. 지난달 말 채권단이 워크아웃 재개를 결정한 지 채 2주도 안 된 시점이다. 과거 1차 워크아웃 때처럼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렸다.
팬택은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법정관리 신청서를 제출했다. 법원은 모든 채권채무를 동결하고 팬택의 계속기업 가치와 청산가치를 비교해 한 달 내로 법정관리 신청을 받아들일지 결정한다. 지난 3월 채권단이 실사한 기준으로 팬택의 계속기업 가치는 3824억원, 청산기업 가치는 1895억원이다. 이 때문에 팬택은 청산보다 법정관리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팬택은 2~3개월 내 기업 회생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채무조정, 출자전환, 무상감자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된다. 법원이 계획안을 인가하면 본격적인 기업회생 절차가 시작된다. 시점은 오는 12월께로 예상된다. 법원은 법정 관리인을 선임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갈 전망이다.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대부분 채무가 탕감되기 때문에 팬택 재무구조는 이른 시일 내 개선된다. 신규 투자 유치나 해외 기업 인수합병(M&A) 가능성도 높다. 중국과 인도 제조사가 팬택을 인수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채권단 주도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과 달리 법원이 주도하는 법정관리에서는 기업 청산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법원이 청산을 결정하지 않더라도 여러 요인이 팬택을 어렵게 할 전망이다.
채무 탕감은 해당 기업에는 좋은 일이지만 협력 업체는 결제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돼 줄도산이 우려된다. 많은 부품이 필요한 제조업일수록 협력업체의 중요성은 더 크다. 후방 생태계가 무너지면 회생이 결정되더라도 해당 기업의 미래는 어둡다. 미래가 없으면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홀로서기가 어려워진다.
법정관리 과정에서 인력 이탈 문제도 발생한다. 지난해 9월 2254명이던 팬택 인력은 올해 3월 1845명으로 6개월 만에 400여명이 줄었다.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도 적지 않은 인력이 회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새 휴대폰 모델을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이통사가 단말기를 구매하지 않는 상황이 계속 되면 팬택은 청산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이통사의 입장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뀔 게 없다는 얘기다.
팬택 관계자는 “키를 쥐고 있는 건 여전히 이통사”라며 “월 15만대 이상 단말기를 팔지 못하면 법정관리에 들어가더라도 청산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팬택은 이날 이통사와 협력사, 대리점 등 유통망에 이준우 대표 명의로 보낸 서신에서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리며 현재의 위기로 고통을 드려 죄송하다는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면서 “분골쇄신의 자세로 하루라도 빨리 경영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업계는 팬택이 지난 2007~2011년 1차 워크아웃을 거치며 체질개선에 성공한 것처럼 이번에도 부활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팬택이 무너지면 국내 휴대폰 시장의 독점이 심해지고 해외 업체 인수로 심각한 기술 유출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대규모 실직 사태다.
한 휴대폰 판매점 관계자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며 “만일 팬택의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유통망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팬택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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