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심각한 물 부족 국가다. 미국 세계자원연구소가 공개한 지역별 수자원 위기 지표에 따르면 싱가포르 물 부족 위험도는 0~5점 중 5점으로 서사하라,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사막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연간 강수랑은 2500㎜ 정도로 인근 동남아 국가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지만 인구 밀도가 높고 좁은 국토 면적 탓에 물을 저장해 둘 저수지나 큰 강이 없다. 물 공급량이 수요량을 턱없이 밑도는 이유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열악한 조건에도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고 있다. 물 부족 위험이 크더라도 정확한 정보와 전략적 관리 기술을 활용하면 안정적으로 수자원을 공급할 수 있다는 성공 사례로 손꼽힌다. 싱가포르 정부는 만성적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물 수입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1970년대부터 빗물 저장과 하수 재이용, 해수 담수화 등의 수자원 확보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그 결과 심각한 물 부족 국가에서 글로벌 물 산업 허브로 변모했다. 한국 기업도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의 수처리, 담수화 프로젝트에서 좋은 성과를 내지만 한국 내 수자원 관리 체계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시에서는 물 부족 문제를 느끼기 어렵지만 가뭄 때마다 공업용수와 농업용수 부족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특히 올여름에는 마른장마가 계속되면서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식수난까지 심해져 농가 피해가 극심했다. 노후화한 상하수도 설비 역시 물 부족 문제를 심화시킨다. 지난 7월 강동원 의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전국 482개 지방상수도 중에서 20년 이상 된 정수시설이 50.4%(245군데)에 달하고 매년 누수로 4500억원이 낭비되는 실정이다.
물 부족은 에너지 위기도 심화시킬 수 있다. 현재 에너지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2040년께 세계 물 공급량이 인류 갈증을 해소하고 에너지를 공급하는 데 필요한 수요량을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수력발전과 화력발전소 냉각에도 엄청난 양의 물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자원 공급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물 낭비를 막기 위한 근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이와 관련, 스마트한 수자원 관리 시스템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취수에서 정화, 배수 등에 이르는 물 사용 전 단계를 통합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생성되는 데이터를 의미 있는 정보로 전환해 빠르고 정확하게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더불어 발생 가능한 문제를 사전에 발견해 고장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는 기능도 제공한다. 세계 물 관련 시설이 공통으로 겪는 문제가 원격 수자원 네트워크 감시와 제어 역량의 부재다. 수자원 인프라가 원거리에 있으면 네트워크 문제를 발견하기 어렵고 결국 문제가 발생한 후에야 이를 알게 돼 이미 정수를 완료한 엄청난 양의 물을 손실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수처리 설비 곳곳의 전력 소모량을 모니터링하고 누수와 인프라 고장을 사전에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비용 절감을 넘어 에너지 비용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이점을 가졌다. 수자원 공급망 관리 솔루션은 통상 수자원 관련 시설의 전력 비용을 5~30%까지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심각한 전력난을 겪었다. 앞으로 물 부족 문제가 심각해지면 매년 전력난 때처럼 국민에게 자발적인 물 절약을 호소하거나 강제 단수로 물 공급량을 조절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 부족 문제는 강수량이나 기후 변화 등과 같이 수자원 공급량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를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전력처럼 발전소 증설 등과 같은 방법으로 공급량을 강제로 늘리기가 어렵기 때문에 전력 부족보다 심각성이 더 크다. 이제 한국도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한 수처리 인프라 도입이 절실해 보인다.
레지 스카제나브 슈나이더일렉트릭 인더스트리 사업부 총괄(본부장) ReGIS.CAZENAVE@schneider-electric.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