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역사적 전환기가 배경이다. 신문물이 들어오는 개화기이기도 했지만, 무기의 중심축이 칼에서 총으로 넘어가는 시기이기도 했다. 극 중 조선 ‘제일 검’의 아들로 나오는 박윤강이 칼을 버리고 총을 잡는다는 설정도 의미심장하다.
드라마의 핵심 소재로 등장하는 총은 화약과 총탄을 총기 뒤쪽으로 넣는 후장식 소총이다. 화약을 총구 앞 쪽으로 넣는 전장식 소총보다 장전속도가 월등히 빠르고 사격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현대의 일반적인 총기와 다를 바 없지만 드라마 배경이 된 조선시대에는 전투와 무기 체계를 송두리째 흔드는 첨단기술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쓰던 화승총은 전장식 소총의 대표 격이다. 한번 발사하려면 총구 앞으로 화약을 채운 뒤 탄환을 넣고, 심지 역할을 하는 화승에 불을 붙여야 했다. 사격 한 번에 몇 분이 소요될 수밖에 없었다.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조선시대 대부분이 ‘칼의 시대’였던 이유다.
총의 지위를 격상시킨 후장식 소총은 1700년대 후반부터 유럽에서 시도되기 시작했다. 초기 후장식 소총에 쓰인 총알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화약과 탄환이 결합된 형태가 아니었고, 여전히 화약과 탄환을 따로 넣어줘야 했다.
후장식 소총에서는 탄환이 총기를 뒤에서 앞으로 통과하며 나와야 했기 때문에 총의 구조 자체가 훨씬 견고해야 했다. 화약이 폭발하며 발생하는 압력을 견디는 총기를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독일(당시 프로이센) 기술자 요한 니콜라우스 폰 드라이제가 1824년 개발한 소총이 최초의 근대식 소총으로 평가된다. 탄피를 이용해 뇌관·탄환·화약을 일체형으로 만든 점 역시 ‘드라이제 소총’의 시사점이다. 일명 ‘카트리지 불릿’이라 불리는 이 같은 방식의 탄약은 현재 쓰이는 탄약과 기본적인 구조가 같다.
노리쇠(볼트)를 젖혀 장전하는 ‘볼트 액션’ 방식의 장전 기술도 이때 채택됐다. 볼트액션 기술 역시 수백 년 전 개발됐지만 단순하고 내구성이 좋아 현대 저격 소총에서 여전히 쓰이고 있다. 원거리 사격 특성 상 빠른 연사 속도보다는 정확도와 단순함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드라이제 소총은 화약을 채울 필요 없이 총알만 넣어 장전하면 바로 사격이 가능했다. 본격적인 ‘총의 시대’를 알린 셈이다. 1868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프로이센군이 승리를 거두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격랑기 조선 백성의 사투를 다뤘다. 고통에 신음하는 백성을 두고 권력에만 몰두하는 양반의 모습도 나온다. 이들은 개화파 지식인을 암살하는 데도 앞장섰다. 나라의 발전보다 자신의 기득권에 집착하는 탐욕을 엿볼 수 있다. 근대식 총기는 서양에서 개발됐지만 화약의 역사는 동양에서 시작했다는 역설과 묘하게 겹친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