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틸라를 흔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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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 동굴에 복호가 매복해 있을거라고 짐작했지만, 동굴의 수는 천 개였다. 운에 맡길 수는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묘안은 없었다. 달도 없는 밤에 동굴은 흉측했다. 천 개의 동굴은 각각 하나의 눈이 되어 미사흔을 살피고 있었고 각각 하나의 무기가 되어 미사흔을 겨누고 있었다.
“무작정 들어가면 낭패를 볼게 뻔합니다.”
에첼이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에첼의 음성은 천 개의 동굴을 들락달락하는천 개의 메아리가 되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순간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왔다. 모두 납작 엎드렸다. 사막의 먼지와 모래가 입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먼지와 모래를 그냥 씹었다. 눈을 부라렸지만 수많은 동굴 중 어디서 날아오는지 알 수 없었다. 곧 모래폭풍이 쳐들어올 듯 했다. 밤보다 더 시커먼 천불동보다 더 거대한 굴(屈)이었다. 그 어느 족속보다 호전적이고 위험한 적이었다.
오형제는 일단 능라를 쳤다. 능라는 화살을 튕겨나가게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엔 적에게 위치를 발각시키게 되는 필멸의 가장(假裝)이었다.
“움직이셔야 합니다. 이곳에 머물다간 죽음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형제는 미사흔은 보챘다.
“아니다.”
미사흔은 이미 제왕이 아니던가?
“내가 능라를 뒤집어쓰고 말을 타고 빙빙 돌겠다. 내가 그들의 눈과 귀를 혼란하게 할 것이다.”
그러자 오형제는 순결하고 힘찼다.
“저희가 돌겠습니다. 저희는 다섯입니다. 저들이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래주세요.”
미사흔 아니라 에첼이 대답했다. 오형제는 능라를 뒤집어 쓴 채 말을 타고 마구잡이로 무질서하게 돌아다녔다. 이들은 마치 투명한 깃발을 뒤집어 쓴 듯, 형체가 없는 유령이 꾸물럭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화살이 여기저기 방향없이 맹하게 쏟아졌다. 어쨋든 오형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게 뻔했다.
“방법이 있습니다.”
에첼이 소리쳤다. 에첼의 눈동자는 완연한 고양이의 그것이었다. 아틸라의 그것이었다.
왕 눌지는 치술공주(鵄述)에게 조용히 말했다.
“나 눌지 이후에는 박(朴)씨와 석(昔)씨는 절대 마립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아 세 성씨의 난립으로 민심이 혼란스러웠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 동생 미사흔을 죽일 것이다.”
“미사흔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르는데...”
치술공주는 딸 하나를 낳았다고 하기에 아직도 소녀다운 용모가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러웠다.
“복호가 떠났다. 복호는 반드시 나를 위해 간 것도 아니다. 분명히 고구려와 내통하고 있음이 뻔하다.”
“복호 왕자님이 오히려 미끼이옵니까?”
치술공주는 왕 눌지가 두렵기도 했다. 온화한 미소 뒤에 섬뜩한 위엄이 있었다. 왕 눌지는 더 이상 대답은 없었다.
“복호가 보낸 사람이 언제 쯤 당도하는가?”
“곧 때가 되옵니다.”
치술공주는 눈길을 아래로 내렸다.
“그때를 기다리자...자비(慈悲)는 공부에 매진하고 있느냐?”
그때 어린 자비가 나타났다. 자비는 의젓했다. 눈빛이 별빛 마냥 빤짝였다.
“자비, 바로 너다.”
“그래. 바로 그 사람이야.”
호노리아는 아틸라를 생각해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아틸라가 라벤나(Ravenna) 궁정에서 볼모로 지내던 시절, 호노리아는 아틸라와 친구처럼 지냈다. 아틸라에게 약혼하자고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거짓 결혼까지 하고 신방을 차려서 아틸라의 잠지를 만진 적도 있었다.
“그가 날 구하러 올거야. 내가 아틸라의 부인이 되면 테오도시우스! 너부터 죽일 것이다.”
호노리아는 당장 자신의 심복을 아틸라에게 보냈다. 장문의 편지와 황금반지를 함께 보냈다. 호노리아는 아틸라에게 진짜 청혼을 했다. 그녀는 아틸라를 통해서 로마제국의 황후가 되고자 했다.
“저를 동로마제국의 수도원에서 탈출시켜 주시면, 당신의 아내가 됨은 물론이고 서로마제국의 절반을 드리겠습니다.”
호노리아는 날아갈 듯 했다. 그녀는 벌써 수도원을 탈출했다고 착각할 정도로 자유를 만끼했다. 한 때 미친듯이 자신의 몸땡이를 던졌던 아우구스도 자신의 갓난 아들도 이제는 가물가물했다. 갑자기 아틸라를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진짜 남자다운 남자로 성장했을 거라 믿고싶었다.
아틸라는 선언했다. 에르낙, 콘스탄티우스, 오에스테스, 에데코가 그의 로마정복을 증거하고 있었다.
“난 호노리아와 결혼하겠다.”
“약속을 지킬까요? 그깟 색녀가 제멋대로 변덕을 부릴텐데, 약속을 저버리면 어쩝니까?”
콘스탄티우스는 호노리아의 서신이 못마땅했다.
“맞다. 내가 라벤나 궁에서 만났던 호노리아는 매우 즉흥적이었지. 분방하고. 어떤 현명한 생각도 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결혼하겠다고 하시는겁니까?”
오에스테스는 회의적이기도 했다.
“아니다 오히려 그 약속을 지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난 서로마제국의 절반만 원하지 않는다. 서로마제국, 동로마제국 전부를 원한다.”
오도아케르가 아틸라 앞에 나섰다.
“로마는 장렬한 전사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