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아틸라를 흔든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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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제는 아직도 불꽃인 풀불에 그을려 얼굴과 얼굴을 감싼 천이 시커먼 박쥐의 몰골이었다.
“벽화란 말이냐?”
그들의 시커먼 눈동자에서 단단한 말뚝이 보였다.
“어두워서 그림의 형태는 희미했습니다.”
눈동자에 단단한 말뚝을 박은 오형제들은 어느덧 단단한 사내가 되어 있었다.
“누군가 오가며 벽화를 그렸습니다.”
미사흔은 산전수전의 귀기(鬼氣)가 서려있었다.
“복호도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겠지. 한 두번 다녀간 것이 아닐 것이다. 복호가 고구려에 잡혀있을 때부터, 그의 종적은 알 수 없다.”
미사흔은 이제 힘의 안정감을 획득하고 있었다.
“벽화의 그림은 모두 다른 듯 했습니다.”
에첼은 돈황의 천 개의 동굴 앞에 드리워진 불우의 그림자를 얼른 떨쳐버리고 싶었다.
“왕자님, 신라인도 있고 고구려인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신라인들은 주로 상인들이 분명하고 고구려인은...”
“그렇다. 고구려인은 군사들이 맞다.”
“자신들의 모습을 그렸을겁니다. 바로 군사들이 싸우는 모습일 것입니다.”
미사흔과 에첼은 황금검을 향해 가파르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오형제는 염려스럽기만 했다.
“무려 천 개의 동굴입니다. 왕자님. 그 모두를 확인하기에 쉽지 않습니다.”
미사흔은 기상은 돌올(突兀)했다.
“밤을 기다려 보자. 그런데 사막의 모래폭풍이 바로 앞이다.”
“오늘 밤 만을 말씀하시는겁니까?”
에첼이 오히려 순해보일 정도였다.
“사막의 모래폭풍이 밤을 완전히 감추면...”
“밤을 감추다니요?”
미사흔은 에첼의 기진맥진한 근심을 위로하려 했다.
“스스로 찾아 올 것이다. 황금검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겨우 그것이란 말인가?”
아틸라는 좀체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그의 온 몸이 난만한 적의를 드러냈다.
“호노리아 공주를 서로마로 돌려보냈다는 것인가?”
아틸라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르낙의 얼굴 상처에서 허연뼈가 살아있는 뱀처럼 꿈틀거렸다.
“테오도시우스는 꽤나 잔꾀를 부린 듯 합니다. 자신의 땅에서 아틸라 제왕님과 서로마제국의 황족 일가와 부딪히는 것을 막은 듯 합니다. 골치아픈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것이겠죠.”
에르낙은 불덩이를 태우고 있는 아틸라의 눈빛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았다.
“호노리아는 나의 약혼자이다. 나의 약혼자를 나의 허락없이 제멋대로 돌려보낸다?”
아틸라는 더 이상 말을 끊었다.
“우리가 동로마제국 국경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알고, 미리 도망시킨 것입니다. 신의 징벌에게 실수 한 것입니다. 감히.”
에르낙의 허연뼈에서 멸절(滅絶)의 피가 솟구쳤다.
“나의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다. 나, 아틸라의 정체를. 동로마의 뼈를 갈아 이 땅에 뿌릴 것이다.”
아틸라는 신발을 단단히 신었다.
“나는 전염병처럼 로마를 폐허로 만들 것이다. 로마를 넘지 못하면 우리는 약속의 땅으로 가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위대한 제국은 세상을 호기롭게 얼씬거리다 사라지는 건달일 뿐입니다. 호노리아 공주를 빌미로 동로마를 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에르낙을 찌르듯 쳐다보는 아틸라의 눈빛은 불덩이가 치를 떨었다. 그러나 말은 느릿느릿 했다.
“말발굽 소리를 먼저 보내라. 화살비를 먼저 보내라. 그 다음에 내가 가겠다. 신의 징벌이 가겠다.”
에르낙은 방금 처녀성을 잃은 여인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가 눈물을 흘리며 물러났다.
에르낙은 아틸라를 기다리고 있는 동로마제국 사신들을 향해 걸어갔다.
“당장 동로마를 쳐야 합니다.”
훈의 전사들은 분노로 출렁였다.
“동로마는 진정한 로마가 아니다. 우리는 서로마제국 절반을 가질 권리가 있다.”
아틸라가 불현듯 나타났다. 아틸라의 한 걸음 한걸음 마다, 그는 느닷없는 자손의 시대를 걷고 있었다. 훈의 전사들은 자신의 몸을 자해하며 기어코 피비린내를 뿌렸다. 전쟁의 유희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틸라의 짧은 한 마디가 피비린내를 널뛰게 했다.
“베어라”
콘스탄티우스, 에데코, 오에스테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로마사신들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그들의 머리통이 허공을 아름답게 날아다녔다. 훈의 전사들은 머리통을 서로 차지하려고 징글한 함성이 되어 덤벼들었다.
호노리아는 자신에게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처럼 음탕하게 쳐다보고 있는 늙어빠진 원로원 의원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늙어빠진 한 마리 똥돼지같은 원로원 의원은 호노리아 공주에게 치근덕 자꾸 웃었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