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은 ‘휘어질 수 있는’이란 뜻을 가진 ‘플렉시블(flexible)’이 말해주듯 자유롭게 휘어질 수 있는 디스플레이 기술을 일컫는다. 이를 위해선 그동안 딱딱하고 잘 깨지는 유리판을 사용해 만들던 디스플레이를 종이와 같이 유연한 특성을 갖는 기판 위에 만들 수 있는 기술적 진화가 필요하다.
이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판 기술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매우 단순하며 명확하다.
첫 번째는 예전 파피루스나 양피지, 죽간이 가졌던 두루마리 형태다. 두 번째 평상시에는 접어서 보관하고, 볼 때는 크게 펼칠 수 있는 접이식 형태다.
이러한 디스플레이가 실용화된다면 휴대폰처럼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필요할 때 넓게 펼쳐 큼직하고 시원한 화면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가방이나 옷, 신발 등에 부착해 로고를 표시하거나 정보를 표시할 수도 있다.
지난해부터 이런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시초 격인 제품들이 잇따라 시장에 나왔다. 아름다운 곡면을 그리며 휘어진 TV 및 휴대폰이 양산품으로 출시됐으며 더 나아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휘었다 폈다 할 수 있는 TV와 휴대폰 또한 함께 출시됐다.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 시계는 손목 굵기에 맞게 굴곡진 화면으로 출시됐으며, 신개념 디자인의 착용형 기기들도 지속적으로 개발 중이다. 가히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원년이라고 할 만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출시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제품들이 혁신적인 수요를 창출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 수준에 아직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소비자가 원하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기술은 과연 무엇일까? 정말 두루마리 TV나 네 번 접는 태블릿PC를 만들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서야 새로운 혁신 수요가 창출될 것인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의 특징 중 가장 혁신적인 것은 바로 ‘디자인 자유도’일 것이다. 그리고 디자인 자유도가 제품에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하우스들이 좀더 용이하게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설계하고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대기업이라고 해도 지금처럼 두세 개 업체의 시도로는 디자인 자유도를 높이기 힘들다.
디스플레이 역사에서 찾기는 힘들지만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이 동참할 수 있는 모델을 반도체 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반도체 분야의 파운드리 서비스 업체와 팹리스 업체 간 비즈니스 모델이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분야에도 적용돼야 다양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융합된 신규 플렉시블 응용제품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혁신 수요로 이어질 수 있다.
높은 디자인 자유도를 갖는 제품은 개발 모델이 다양해져 투자를 집중시키기 곤란한 특성을 갖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재 개발돼 있는 투자를 필요로 하는 기술들 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에 최적화된 공정 기술 개발이 수반돼야 한다. 이러한 공정기술 개발은 필연적으로 신장비와 신소재의 등장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소수 기업만으로는 불가능하고 국내 모든 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부품 장비 업체들이 모두 합심해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기지개를 켜고 있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시장은 반드시 활짝 피어나야 할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디스플레이 산업을 중흥시키기 위해서라도, 대중소 산학연관 모두 힘을 합치고 역량을 모아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산업에 주어진 과제를 헤치고 나아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철종 전자부품연구원 디스플레이융합연구센터장 cjhan@ke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