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브라질 상파울루에 출장을 갔다가 우연히 시내에 위치한 축구박물관에 들렀다. 박물관이 위치한 파카앵부 축구장은 1950년 열렸던 브라질 월드컵 경기가 열릴 만큼 브라질 축구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곳이다. 3층으로 구성된 박물관에는 축구의 나라 브라질답게 월드컵 5회 우승의 족적과 축구와 브라질의 역사가 곳곳에 담겨 있다.
그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축구 골대 모양의 봉 상단에 적힌 글귀다. 작은 골대 상단 봉에는 브라질이 월드컵에 출전해 역대 대회에서 이기고 진 상황을 적어 놓았다. ‘우리는 왜 한일월드컵에서 승리했나(2002 JAPAO E COREIA DO SUL POR QUE GANHAMOS?)’를 비롯해 ‘우리는 남아공에서 왜 졌나(20010 AFRICA DO SUL POR QUE PERDEMOS?)’라는 글귀가 적혔다.
방문 당시에는 아직 ‘브라질에서 왜 졌나’는 적혀 있지 않았다. 아마도 이 질문 역시 조만간 골문에 새겨질 것이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우승컵을 놓쳤다는 사실이 축구 강국 브라질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글귀일 수 있다. 반면에 그 글들은 브라질이 왜 축구강국이 됐는지를 알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끊임없이 과거에 대해 질책하고 반성하고 분석할 때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한낮 넋두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는 ‘왜’ 라는 질문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이 글귀를 우리 현대사로 적용하면 어떨까. 아마도 현대사란 골대에 글을 남긴다면 ‘성수대교는 왜 무너졌나’ ‘IMF 외환 위기는 왜 일어났나’ ‘세월호 참사는 왜 일어났나’ 등 아프거나 자랑스러울 과거가 나올 법하다. 하지만 우리 박물관이나 기록관 어디에도 이런 글은커녕 넋두리조차 없다.
어쩌면 어두운 과거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될 것이란 우려에서 이런 의문조차 갖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먼 미래를 본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 사회 곳곳에 ‘왜’라는 글귀를 곳곳에 남겨야 하지 않을까.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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