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처리현장을 가다]<하>미국 노스아나 원전

2009년 네바다주 유카마운틴에 핵연료 최종 처분장 만드는 계획이 취소되면서 미국 원전 정책은 큰 고민에 빠진다. 유카마운틴 영구 처분을 기다리던 핵연료가 갈 곳을 잃었기 때문이다. 현재 미 현지 원전은 자체적으로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해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노스아나 원전도 그중 하나다. 노스아나 원전은 핵연료 습식저장고의 포화를 대비해 건식 저장시설 두 곳을 운영 중이다. 전자신문은 미국 샌디아 국립연구소에 이어 후속으로 미국 노스아나 원전을 소개하고 미국 현지 원전의 핵연료 중간저장 실태와 향후 계획 등을 점검한다.

노스아나 원전 전경
노스아나 원전 전경

◇고리 원전과 유사하지만 다른 노스아나

워싱턴 DC에서 차로 2시간 거리 버지니아 중부에 위치한 노스아나 원전. 냉각수를 공급받는 노스아나강 이름을 딴 이 설비는 용량 1000㎿급 가압경수로형 원전 두기가 가동하며 현재 45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노스아나 원전은 우리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원전을 빼닮았다. 발전소 1호기가 운전을 시작한 해는 1978년으로 고리 원전과 같다. 2호기는 1980년에 운전을 시작했다. 설계 수명 만료 이후 계속 운전을 하고 있는 점도 고리 원전과 같다. 노스아나 원전은 20년간 계속운전 허가를 취득해 1호기는 2038년, 2호기는 2040년까지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노스아나 원전은 많은 부문에서 통상적인 사회적 인식을 뛰어 넘는다. 경영 주체가 대표적인 예다. 국내 모든 원전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이 담당하고 있는 것과 달리 노스아나 원전은 미국 최대 에너지 생산 및 수송 기업인 도미니온 제너레이션이 운영하고 있다. 내륙에 위치해 냉각수를 인근 강에서 공급받는 점도 특이하다. 원전 신뢰감이 낮고 중대 사고에 대한 우려가 큰 국내 상황에서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내륙 원전에 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중간저장시설로 10년의 시간을 확보한 노스아나 원전

1호기가 첫 운전을 시작한 이래 35년 이상 가동한 노스아나 원전은 배출한 사용 후 핵연료 양도 상당하다. 원전 내부에 있는 습식 수조는 총 1780여개 공간 중 1440여 개가 채워져 있다. 유카마운틴 프로젝트 취소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면 습식수조 포화로 원전을 멈췄을 수도 있던 상황이다.

넘쳐나던 핵연료는 지금 노스아나 원전 부지 한쪽에 마련된 건식 저장 시설에 보관 중이었다. 핵연료 저장 시설에 대한 고정 관념에 밀폐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일반 평지와 다름없는 잔디에 시멘트 바닥을 포장하고 그 위에 콘크리트 더미가 모여 있는 것이 전부다. 얼핏 봐선 방치하는 느낌마저 드는 이 시설에는 입구의 차량 차단기와 철망 이외에 핵연료 저장고 관리를 위한 어떤 시설도 없다. 시설을 보기위해 안전복을 입거나 별도 장비를 구비할 필요도 없다. 철제 프레임과 두꺼운 콘크리트 외벽으로 둘러싼 저장고 그 자체로 완벽한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게 이 곳의 설명이다.

노스아나 원전은 중간 저장 시설 운영으로 10년간의 핵연료 처리 여유를 확보했다. 수명을 다한 연료는 7년간 원전 내 습식 설비에 저장된 후 이곳 건식 저장소로 옮겨진다. 처음에 만들어진 저장소는 이미 꽉 찼지만 아직 두 번째 부지는 여유 공간이 많이 남아있다. 페이지 캠프 노스아나 라이센스 슈퍼바이저는 “이미 충분한 용지가 확보돼 중간 저장을 계속 늘려가도 문제가 없다”며 “최종 처분과 중간 저장 여부는 국가의 선택이지만, 만약 최종처분 관련 의사결정이 늦어져도 원전 운영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진에도 꿈쩍 않는 저장용기, 해외기업은 벌써 시장으로 접근

노스아나 원전 중간 저장 시설에 보관되어 있는 핵연료 다발은 모두 1568개다. 현재 습식저장고에 보관된 수를 넘어서는 양이다. 이 연료 다발은 32개씩 49개의 콘크리트 저장고에 분리 저장되어 있다. 국내 월성 원전도 핵연료 건식저장을 하고 있지만 중수로형으로 경수로형 핵연료를 건식저장 중인 노스아나 원전과 차이가 있다. 경수로형 핵연료는 중수로형보다 부피가 크고 열과 방사선 방출이 더 높다.

원전 안전 관련 가장 큰 우려는 자연재해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원자력 관련 시설에 대한 지진과 해일 관련 대책을 크게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부문에서 노스아나 원전은 원전 산업계 이목을 끌고 있는 시설 중 하나다. 이미 대규모 지진을 한 차례 겪어봤기 때문이다.

2011년 8월 미국 동부에 이례적인 5.8도 강진이 발생했다. 노스아나 원전은 진앙지로부터 불과 24㎞ 떨어져있었다. 이 지진으로 원전 2기가 모두 자동 정지했고 비상전원으로 디젤발전기가 가동했다. 당시 지진은 핵연료 중간 저장시설에도 영향을 미쳤다.

제1부지에 보관 중이던 27개의 콘크리트 저장고 중 25개가 4인치가량 자리를 이동했지만 방사능 누출과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설계상 진도 6.2 지진도 견딜 수 있다. 현장 관계자는 진도 6.2 이상의 지진이 와도 저장고가 쓰러지지 않는 한 안전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무게 115톤에 달하는 저장고가 그리 쉽게 쓰러질 것 같지는 않았다. 제2부지 저장고는 아예 핵연료 다발을 눕혀 저장 중이다.

핵연료 저장설비 격납고에서는 콘크리트 외벽 내부에 들어가는 철제 플레임을 볼 수 있었다. 철제 플레임의 제작사는 일본 기업인 히타치. 프랑스 아레바가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히타치가 하도급으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발전 설비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주요 기업들은 이미 핵연료 시장에도 진출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원전 정책을 놓고 끝을 알 수 없는 논쟁을 계속하는 사이 이미 해외 기업들은 핵연료 시장을 선점해가고 있다.

철제 플레임 하나의 가격은 10억원 가량, 콘크리트 도포와 설치 작업까지 하면 저장고 하나를 완성하는데 드는 비용은 30억원이 족히 넘는다. 최근 국내 원자력 계에서 원전 폐로와 핵연료 처분을 산업으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새삼 떠오르는 순간이다.

워싱터DC(미국)=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