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질기의(護疾忌醫)라는 말이 있다. 병이 있어도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문제를 키우는 모습을 풍자할때 쓴다.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의 저서 ‘통서’에서 유래됐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글로벌 IT기업의 원조격인 한국IBM을 보자. 100년 역사를 갖고 있는 IBM은 1967년 한국에 진출해 올해로 47년을 보낸 기업이다. 역사가 깊은 만큼 수많은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정보책임자(CIO)가 한국IBM 출신이다. 한국IBM은 우리나라 ICT 역사의 한 축이다. 한국IBM 직원의 명함 한 장은 말 그대로 한때 자랑거리였다.
그랬던 한국IBM의 기업상이 변화하고 있다. 과거 금융IT 강자 소리를 듣던 한국IBM이지만 이제는 금융권에서도 외면받는다. 오로지 메인프레임 하드웨어 시장만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안쓰러울 정도다.
한국IBM에 친근감을 가졌던 이들이 이제는 이 같은 상황에 우려를 표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충고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귀를 닫은 것일까. 오히려 지난해 초 셜리 위 추이 사장이 오면서부터 언론의 충고에 귀를 닫고 일방적 메시지만 전달했다. 셜리 위 추이 사장은 언론의 말에만 귀를 닫은 게 아니라 시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닫았다. 현지 문화에 맞지 않는 행위로 우리나라 대표 금융회사인 국민은행을 혼란에 빠뜨렸다.
한국IBM은 최근 전 업계가 일자리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도 정규직 프리세일즈 직원을 콜센터로 발령 내는 등 이상한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한국IBM 직원 중에는 그동안의 상황을 빗대 “남아있는 한국IBM 소속 한국인들만 힘들어지게 됐다”는 얘기가 스스럼없이 나오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상당수다. 어쩌면 한국IBM이 호질기의로 인한 최악의 결과를 보여줄지도 모를 일이다.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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