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식을 몇 명이 보겠습니까. 버스와 택시 승객, 자가 운전자 등을 다 합해도 100만명이 안 됩니다. 미국식 TV는 3000만명이 시청합니다. 휴대폰으로 TV를 보게 하면 1000만명이 볼 것입니다. 100만명을 위해 정부가 이미 결정한 전송 방식을 변경해야 합니까.”
2003년 12월 30일 청와대 국무회의장.
노무현 대통령에게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은 디지털TV(DTV) 전송 방식을 둘러싼 논쟁 경과를 보고했다. 진 장관은 논쟁 해법도 제시했다.
“이동식을 하려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싱가포르는 바둑판처럼 수신안테나를 설치했습니다. 전국에 수신안테나를 설치해 보십시오. 환경을 망칠 겁니다. 따라서 이미 방송 중인 미국식과 이동식 사용자를 위한 DMB를 병행하면 이 논쟁은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언론노조와 방송사 경영진을 설득하는 일입니다.”
노 대통령이 다소 누그러진 표정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거 참. MBC를 시청할 때는 언론노조의 주장이 맞는 것 같더니 오늘 이야기를 들으니 진 장관 말이 맞는 것 같네. 어느 말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나는 진 장관 말을 믿어야겠지요. 이 논쟁은 정통부가 맡아서 해결하고 그 결과를 다음 달 보고해 주세요.”
‘미국식(ATSC)인가, 유럽식(DVB)인가.’
디지털TV(DTV) 전송 방식을 놓고 2000년 8월부터 정통부와 방송계는 치열하게 대립했다. 1997년 11월 20일 미국식을 표준으로 결정한 정통부는 유럽식을 요구하는 방송계 주장을 수용할 수 없었다. 논쟁은 갈수록 격화됐고 사태는 엉킨 실타래처럼 꼬였다. 유럽식을 주장하는 문화방송(MBC)은 이 문제를 앞장서서 집중 보도했다.
국무회의 이틀 전인 그해 12월 28일 일요일 저녁 9시 15분.
MBC는 ‘특집 디지털TV시대-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를 보도했다. MBC는 전송 방식 쟁점과 미국식과 유럽식 각각의 장단점, 외국 실태, 해결책, 외국의 전송 방식 선정 과정, 이동수신 시장 가능성, 정통부 정책 문제점 등을 집중 다뤘다.
노 대통령은 휴일 밤 관저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이 프로를 시청하다 깜짝 놀랐다.
보도 내용대로라면 유럽식이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어 전송 방식을 변경해야 할 상황이었다. 대통령으로선 그냥 넘길 수 없는 중대 사안이었다.
노 대통령은 월요일 아침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DTV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직속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중립적으로 검토해야겠다. 그전에 정통부 입장을 들어보자. 내일 국무회의에서 정통부 장관이 경과를 보고하도록 하라.”
이튿날인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장 분위기는 극도로 무거웠다. 노 대통령이 진대제 정통부 장관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그제 밤 MBC 프로를 봤지요. DTV 전송 방식에 문제가 많은 모양이지요. 어떻게 되고 있는지 설명을 해 보세요.”
진 장관은 준비한 ‘지상파TV 디지털전환 쟁점과 대책’을 보고했다. 그간 디지털전환 추진 경과와 전송 방식 논쟁, 최근 동향, 쟁점과 대책 등을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보고했다.
당시 상황은 심각했다. 방송노조는 그해 10월 24일 정통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통부 폐지를 주장했다. 노조는 12월 17일 철야농성에 돌입하면서 총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만약 방송사가 정통부 정책에 반대해 총파업을 한다면 그건 정권이 흔들릴 일이었다.
진대제 장관의 증언.
“‘정통부가 논쟁을 해결하라’는 대통령 말씀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일단 정통부 폐지나 제가 불신임 당하는 위기는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국무회의 도중 있었던 뒷이야기 하나.
노 대통령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L 장관이 “언론노조는 안 그렇다고 하던데…”라며 토를 달았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진 장관이 손으로 탁자를 탁 치며 소리쳤다.
“야 XX, 잘 모르면 가만히 있어. 당신이 뭘 알아.”
정통부 고위인사 출신 S씨의 말.
“관료출신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관료출신들은 이견이 있어도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대기업 CEO 출신으로 오너십이 있고 논리가 정연한 진 장관이니까 가능했던 행동입니다.”
잠시 과거로 돌아가 DTV 추진과정을 알아보자.
정통부는 1997년 11월 20일 디지털방송추진협의회(위원장 이충웅 서울대 교수)와 정보통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미국 ATSC 방식을 우리나라 지상파 디지털TV 표준 방식으로 결정했다.
김창곤 당시 전파방송관리국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의 회고.
“전송 방식을 미국식으로 결정할 때 방송사 기술본부장들이 다 동의했습니다. 당시 방송환경과 국익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 8월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시청자연대회의 등이 DTV 전송 방식 재검토를 정부에 요구했다. 미국식은 도심 수신이 불량하고 휴대 및 이동서비스에 부적합한 반면에 유럽식은 이동수신이 양호해 대만도 미국식 도입을 포기했다는 게 논거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후보시절 대선공약으로 DTV 전송 방식 재검토를 제시했다.
MBC는 2002년부터 특별기획 ‘디지털전송 방식 논란, 진실은 무엇인가’를 비롯해 시사매거진 2580의 ‘그래도 미국식인가’, PD수첩 ‘디지털전송 방식 논란’, 100분토론 ‘디지털방송 미국식인가, 유럽식인가’ 등을 통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다. 이 바람에 DTV 전송 방식은 사회이슈로 떠올랐고 국회 단골 질의메뉴가 됐다.
2003년 10월 4일.
진대제 장관과 노성대 방송위원장(MBC 사장, 광주문화재단 대표 역임)은 이날 오전 조찬회동을 갖고 해외 DTV 실태 합동조사단 구성에 합의했다. 공동조사단장은 김창곤 당시 한국정보보호원장과 이효성 방송위 부위원장(현 성균관대 교수)이 맡기로 했다. 조사단은 정통부 2명, 방송위 2명, 방송3사 각 1명, 경실련 1명, 학계 2명, ETRI 1명, 산업계 2명, 각 방식의 기술전문가 1명 등 모두 18명으로 구성했다.
정통부에서는 이재홍 방송위성과장(전남체신청장 역임, 현 LP가스공업협회 부회장)과 송상훈 사무관(현 미래창조과학부 과장, 해외연수 중)이 참여했다.
조사단은 11월 22일 출국해 지상파 DTV 전송 방식과 관련한 쟁점 사항을 확인·검증할 수 있는 미국, 영국, 독일, 호주, 대만, 일본, 멕시코, 캐나다, 싱가포르 9개국의 정부기관, 표준화단체, 방송사 등 25개 기관을 방문했다. 미국에서는 ATSC 서비스 제공 실태를 실내외 아날로그 대비 수신 성능을 비교하고, 호주에서는 본방송 중인 디지털TV 서비스를 실측해 쟁점 사항을 확인·검증했다. 조사단은 25일간의 해외 실태조사를 벌이고 12월 16일 귀국했다.
김창곤 당시 공동 단장의 말.
“류필계 당시 전파방송관리국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이 제가 공동단장으로 꼭 가야 한다고 해서 가게 됐습니다. 현지에서 양측의 신경전이 대단했습니다.”
이듬해인 2004년 1월 28일.
진대제 장관은 노 대통령에게 지상파TV 디지털전환 쟁점 및 대책을 보고하면서 “고정수신은 미국식으로, 이동수신은 DMB로 논란을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정통부 주도로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논쟁을 해결하라”고 지시했다.
진 장관은 마음을 열고 이해당사자들과 정책간담회, 개인면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논쟁을 타결 짓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지난(至難)한 일이었다.
진 장관은 1월 30일 노성대 방송위원장, 정연주 KBS 사장(현 노무현재단 사료편찬특별위원장), 신학림 언론노조위원장(현 미디어오늘 사장) 등으로 ‘4인 대표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논의할 ‘8인실무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그해 2월 정통부 인사에서 방송관리국장에 신용섭 정보보호심의관(현 EBS 사장)이, 방송위성과장에 라봉하 서기관(현 방송통신위원회 기획조정실장)이 임명됐다. 이재홍 과장은 부이사관으로 DTV 전담 팀장을 맡았다.
이후 양측은 7월까지 모두 31차례의 회의를 열어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동수신에 약한 미국식을 보완하기 위해 지상파 DMB를 도입하기로 합의하면서 얽힌 문제가 하나씩 풀렸다.
이 논쟁을 해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정통부측 인사는 실무위원인 이재홍 팀장이다. 그는 DMB를 처음 고안하고 DMB 작명까지 한 자타가 인정하는 이 분야 전문가였다. 그는 처음 DMB를 발표할 때도 정통부가 아닌 다른 기관 전문가가 발표하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그는 정부 부처 과장으로는 유일하게 MBC ‘100분토론’에 패널로 나가 미국식 선택의 당위를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이재홍 당시 팀장의 증언.
“각종 세미나 등에 적극 참석해 미국식의 장점을 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와 신뢰관계를 구축해 문제를 해결하자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협상 상대인 석원혁 당시 방송노조 DTV비대위 정책실장(현 MBC 디지털본부장)과 허심탄회하게 해결책을 모색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역시 논리와 열린 마음으로 공감해야 문제가 풀리더군요.”
그해 7월 8일.
4년을 끌어온 정통부와 방송계 간 디지털TV 전송 방식 논쟁이 마침내 타결됐다. 진대제 장관, 노성대 위원장, 정연주 KBS 사장, 신학림 언론노조 위원장은 이날 아침 서울 마포 홀리데이인서울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고정식 DTV 전송 방식을 미국식인 ‘ATSC’로 하고 △지상파 이동멀티미디어방송 방식으로는 지상파 DMB와 병행해 DVB-H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4년 만에 갈등이 사라진 것이다.
그해 7월 13일.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진대제 장관에게 “DTV 전송 방식 논쟁을 해결하느라 수고 많이 했다”며 “이번 일은 인내심을 갖고 어려운 갈등과제를 잘 마무리한 참여정부 첫 모범 사례”라고 극찬했다.
문민정부에서 도입한 DTV 전송 방식은 국민의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 대화와 타협으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중심에 열린 사람들이 있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