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35년 이상 원자력 발전으로 대부분 전력을 생산해왔다. 그 결과 1만3000톤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해 원전 내에 저장 중이며 지금도 매년 약 750톤씩 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는 높은 열과 강한 방사선을 방출해 안전한 관리가 필수며 최종적으로는 인간 생태계에서 격리시켜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와 관련해 아직 뚜렷한 대책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 모두를 위해 안전한 사용후 핵연료 관리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과거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부지 확보 과정에서 많은 사회적 갈등을 경험했던 만큼 공론화로 문제를 풀어보려 하고 있다.
‘공론화(公論化)’란 공공정책 사안이 초래할 사회적 갈등을 놓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 의견을 수렴해 정책 결정에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절차다. 민간 자문기구인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가 지난해 출범해 이를 담당하고 있다. 광범위한 의견을 모아 결과를 연말까지 정부에 권고해야 한다.
해외 사정은 어떨까. 사용후 핵연료 관리문제는 원전 선진국에서조차 난제다. 세계 400기가 넘는 원전에서 매년 1만2000톤 이상의 사용후 핵연료가 발생하는데 아직 고준위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국가는 없고 핀란드, 스웨덴만이 처분 시설 부지를 선정한 상태다.
다행히 영국·프랑스·캐나다가 공론화를 거쳐 사용후 핵연료 관리 정책을 결정한 사례가 있어 길을 제시해주고 있다. 각국 상황에 따라 공론화 기간과 형태는 서로 달랐지만 다양한 의견을 통합해 해법을 찾아 공론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원전 지역 공개회의와 공청회, 환경단체 서면 의견수렴, 토론그룹 운영, 이해관계자 대면토론 등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의견을 직접적으로 수렴한 것은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우리나라도 지난 6월부터 토론회, 대학생 토론회, 타운홀 미팅을 시작으로 사용후 핵연료 관리 방안과 관련한 대국민 의견수렴이 한창이다. 그런데 공론화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최선의 방안이 도출되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참여다. 사용후 핵연료 관리 문제는 기술공학적 측면은 물론이고 경제와 사회적 관심 사항이 고려돼야 하는 복잡한 사안이어서 이해 관계자의 참여와 의견개진은 필수다.
이 때문에 대상별로 의견수렴 프로그램을 운영해 체계적인 국민적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인문사회, 과학, 원자력계 전문가 대상 토론회와 워크숍을 진행하고 시민사회 단체, 언론계 대상 포럼, 소비자단체 라운드테이블도 전개한다. 원전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타운홀 미팅과 토론회,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토론회, TV토론회, 설문조사, 공론조사 등 다양한 참여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더불어 상시적인 ‘국민 의견수렴센터’도 위원회 홈페이지에 운영 중이다.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는 여러 이해관계자 이야기를 듣고 국민의 안전성을 최우선 가치로 최선의 관리방안을 모색하려 한다. 도출된 관리방안은 정량적 평가를 기초로, 정성적 평가까지 통합해 최종 평가하고 이로부터 실현 가능한 관리방안을 도출한 후 다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 권고안을 작성하려 한다.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성공 여부는 얼마만큼 많은 지혜를 모으는지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더 적극적으로 학계, 지역주민, 시민단체, 일반 시민들이 사용후 핵연료 처리방법 의견을 개진해주기를 기대한다.
홍두승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장 dshong@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