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세계 최초 금속 활자를 개발한 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2D 금속 프린터로 지식을 대중화시킨 혁명적 사건이었다. 금속활자를 기반으로 한 2D 프린팅 기술로 그동안 상류계층에만 제한됐던 수많은 지식을 활자로 인쇄해 민중에게 알릴 수 있었고 지식의 민주화로 이어졌다. 지식의 민주화는 조선시대 사대부의 발전으로 이어져 조선의 성장을 도왔다.
30여년 전 시제품을 빨리 만들기 위해 개발된 3D 프린터는 특허가 만료돼 보급형 3D 프린터 등장을 유도했다. 3D 프린터 대중화는 단순한 기계의 출시를 넘어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바꿀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3D 프린터의 본질은 생산의 민주화에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자본주의는 대형 자본에 의한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성장해왔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고용 없는 성장, 무역 갈등이 현재 세계 자본주의의 실체라고 볼 수 있다. 3D 프린터는 자본주의의 어두운 실체, 그 한계를 뒤엎는 역할을 할 것이다.
첫째, 3D 프린터는 자본이 없는 창조적 소수가 아이디어만 있으면 대량 투자 없이 자신만의 제품 생산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돕는다. 그동안 글로벌회사 혹은 재벌회사가 주도해온 대량 생산과 창조적 소수의 제조 활동 간 충돌을 의미한다. 즉, 대량생산소비 경제와 롱테일(Long-tail) 경제의 충돌을 뜻한다. 전 세계 소비의 80%는 막강한 경제력을 지닌 OECD 가입국(전 세계 인구 중 상위 15%)에서 이뤄진다. 하지만 OECD의 소비자는 자신만의 커스터마이징(Customizing) 제품, 더 나아가 자신이 원하는 제품을 스스로 만드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 대량 생산으로 대형 물류 창고가 있어야 취급이 가능하고 이것들은 총대리점, 대리점, 지역과 복잡한 유통체계를 통과해 세계 곳곳으로 전달된다. 유통을 잡은 자가 소비시장을 장악하게 되는 구조다. 미국 오프라인 유통 강자인 월마트, 온라인 강자인 이베이와 아마존, 한국의 이마트와 홈플러스, 홈쇼핑TV 등이 여기에 속한다. 유통망을 장악한 거인들은 30~50% 유통 이윤 증가를 야기해 대량 생산으로 인한 원가 절감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내가 원하는 상품을 내 집에서 직접 출력해 사용할 수 있기에 유통의 파괴를 불러일으켜 제3의 소비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즉, 권력이 유통에서 디자이너에게 이동하게 될 것이다. 유통 이윤이 큰 곳일수록 3D 프린팅의 태풍이 커질 것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해외에서 자원을 수입하고 이를 가공 수출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국가다. 전체 GDP의 60~70%는 가공 수출이다. 한국 경제의 맹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벤처 창업의 증가, 창조적인 소수가 3D 프린터를 활용해 큰 투자 없이 자신의 창의적 제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제조 및 판매할 수 있도록 소자본 창업을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어두운 자본주의의 맹점을 없애고 아름다운 창조경제를 이루는 것이 바로 3D 프린터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3D 프린터 역시 양날의 칼을 갖고 있다. 3D 프린터가 단순한 직접제조를 가져오는 또 하나의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락한다면, 나아가 3D 프린터가 기존 생산인력을 대체하는 데 그친다면 일자리를 잃게 하는 수단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3D 프린터를 활용한 소재, 디자인, 혹은 서비스 산업은 크게 발전해 수많은 고용을 창출할 수 있지만, 제조업에서는 오히려 일손을 줄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인류 삶의 방식을 바꿀지도 모르는 이 기술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지원은 성공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3D 프린팅 각계 전문가 5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D 프린팅 전략기술 로드맵 수립 출범식’을 가졌다. 정부는 우리나라 3D 프린팅 산업 발전의 토대를 이룰 기술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기초·원천 연구에서 사업화까지 모든 주기를 포괄한 전략기술 로드맵을 수립하기로 했다.
신성장동력이 될 만한 창의적인 제조업을 육성하는 정책이 확대돼야 하며 3D 프린터 산업은 그 한 축이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올바른 방향으로 3D 프린터 육성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고의 IT 인프라와 우수인력을 보유한 한국은 향후 3D 프린터 산업에서도 선도적 위치에 오를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갖추고 있다. 적어도 3~5년 안에는 이런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유석환 로킷 대표 shyou@roki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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