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32주년 특집1- 새로운 융합, 협업] 프랑스 전력 ICT

‘수요자원 전력시장 거래’를 골자로 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네가와트시장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네가와트는 기업, 건물, 공장에서 절약한 소량의 전기를 모아 전력 시장에 입찰해 거래하는 사업이다. 네거티브 발전이라는 뜻으로 메가와트 단위의 발전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고객사 전력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에너지풀 오퍼레이션 센터 전경.
고객사 전력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에너지풀 오퍼레이션 센터 전경.

사업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ICT와 융합으로 다양한 사업 기회가 파생되고 고용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미 해외에서는 네가와트 사업으로 안정적 수요 관리와 신산업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나라가 있다. 유럽 전력 ICT산업의 핵심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네가와트 사업의 미래를 엿보고 왔다.

◇에너지 절약으로 돈 버는 프랑스

수요관리 전문기업 ‘에너지풀’은 프랑스 제2 도시 리옹으로부터 남동쪽으로 110㎞. 샹베리 이노베이션 벤처타운에 자리 잡고 있다. 회사는 지난 2009년 작은 스타트업으로 전력 수요관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수요관리 스타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샹베리에는 수력발전소와 대형 공장이 밀집해있다.

에너지풀은 이들 공장을 고객사로 확보했다. 공장 생산량 감소 없이 전력을 줄여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설명했고 이를 입증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에너지풀의 사업모델은 국내에서 곧 시작될 네가와트사업과 같다. 과거에는 전력수요가 증가하면 발전소에서 전력을 더 생산했다. 반면 네가와트사업은 전력사용을 줄여 수급 균형을 유지한다. 절약한 전력, 즉 수요자원은 발전자원과 똑같이 전력 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 판매 수익은 에너지풀과 절전에 동참한 고객사 몫이다. 에너지풀에 따르면 제조업체는 수요관리 사업에 참여해 연간 평균 전기 사용비용의 15% 정도를 절감하고 있다.

에너지풀은 철강(480㎿), 시멘트(50㎿), 펄프·제지(80㎿), 화학(90㎿), 비철금속(400㎿) 분야에서 다양한 분야 제조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확보한 수요 자원 총량은 1200㎿에 달한다. 원자력발전소 1기 용량을 넘어선다.

에너지풀이 유럽 전력시장에서 스타기업으로 떠오른 것은 수요관리 사업의 신뢰도를 높였기 때문이다. 송전 기업으로부터 절전 요청이 오고 실제 절감이 이뤄지는 시간은 3초 이내다. 이는 급전 지시를 받은 가스터빈 화력발전소가 전력을 생산해 공급하는 시간과 비슷하다. 회사는 지금까지 주어진 절전 목표를 모두 제 시간 안에 달성했다. 절감량도 적지 않다. 지난해 4월 5일 505㎿의 피크를 줄였고 이를 통해 1783㎿h의 전력량을 절감했다. 이는 프랑스 수요관리 시장 기록으로 남아있다.

에너지풀의 신속, 정교한 대응은 ICT 기반 수요관리시스템으로 가능하다. 회사는 고객사 전력 소비 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오퍼레이션 센터를 운영한다. 이곳에서 고객사 전력 사용현황과 기기 가동을 멈춰 확보할 수 있는 수요자원량을 실시간으로 파악한다.

고객사 공장 조명, 공정설비에 설치된 센서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보낸다. 전력사용량을 줄이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에너지풀은 고객사 공장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우선 순위가 떨어지는 설비부터 가동을 중단한다. 이를 위해 1년에 걸쳐 다양한 절전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았다.

에너지풀로 인해 프랑스와 일부 유럽 국가는 발전 자원에 비해 값싼 수요 자원으로 전력 안정성을 유지하고 있다. 예비전력용 발전설비를 구축하는 비용은 약 800달러/㎾지만 수요 자원 가격은 절반인 400달러/㎾ 미만이다.

회사는 2016년 이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맞을 것으로 기대했다. 전력판매 사업자가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도록 발전·수요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 용량 시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밸런싱 시장은 3000만유로 규모지만 용량 시장은 4억유로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영국과 벨기에 제조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했고 최근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일본에 진출했다. 기욤 페르네 에너지풀 본부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에서 도쿄전력과 함께 10분 이내에 대규모 사업장의 전력 사용을 줄이는 수요관리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며 “아시아 시장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올리비에 바우드 에너지풀 사장

“전력 수요 관리는 ICT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도시, 나아가 국가 전체 전력사용현황과 절감량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수요관리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ICT 역량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올리비에 바우드 에너지풀 사장은 수요관리사업과 ICT융합은 향후 전력시장의 메가트렌드“라며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업 기회와 고용이 창출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예전에는 수요반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전화로 모든 연락을 했다면 지금은 자동으로 설비와 시설이 연결돼 전력망 과부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를 몇 초 만에 수행한다”며 “IT 진화 덕분에 기존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나 불가능 했던 일들이 이제는 가능해졌고 비용이 적게 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바우드 사장은 우리나라가 추진하는 네가와트 사업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대다수 국가 전력시장은 과거 발전 측면에 규제를 집중했는데 한국은 수요 측면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며 “유럽도 한국의 전기사업법 개정안과 같은 에너지 효율성 지침을 도입한 이후 수요관리시장이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에너지효율성지침은 송전시스템 운영에 있어 수요관리 사업자와 전력 생산자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전력 소비가 많은 제조 시설이 가장 중요한 수요반응 참여자가 됐다.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현재 일본에서 동경전력과 수요관리사업에 나서며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다”며 “한국도 가능성이 높은 시장 중 하나로 보고 있고 다양한 사업모델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 주도 스마트그리드 사업의 미래를 엿보다

파리 중심부에서 서쪽 외곽에 있는 이씨레물리노시. 이곳에서는 ‘이씨그리드’로 불리는 도시형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슈나이더 일렉트릭, 토털, 뷰익 텔레콤, 마이크로소프트, 알스톰 등 프랑스 국내외 10개 대기업은 2012년 스마트그리드 실증 단지 조성에 나섰다. 지역 랜드마크인 뷰익 텔레콤 본사건물과 인근 지역 주택, 가로등 등 도시 기반 시설의 전력 사용 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2016년까지 다양한 사업 모델을 발굴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10개 회사는 지금까지 이씨그리드 프로젝트에 250만유로를 공동 투자했다. 우리나라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에 2000억원이 들어간 것을 감안하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씨그리드에 쏠리는 관심은 크다. 상업·거주 지역을 융합한 도시형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이자 100% 민간자본으로 추진한 최초 사업이기 때문이다.

고객 수만 3500만명에 달하는 프랑스 송배전사업자인 ERDF도 이 사업에 참여했다. 회사는 링키(Linky)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이시그리드에서 타진하고 있다. 링키 프로젝트는 지능형 원격검침 시스템(AMI)을 보급해 고객 전력사용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전력 효율을 높이는 사업이다. 앤마리 고사드 ERDF 처장은 “2016년까지 총 4조유로(약 6000조원) 예산을 투입해 프랑스 전역에 3500만대의 AMI를 보급하는 것이 링키 프로젝트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씨그리드 프로젝트 구심 역할을 하는 뷰익 텔레콤 본사 건물은 이씨그리드에 참여하는 모든 주택과 설비 전력 사용 정보를 처리하는 관제센터 역할을 맡는다.

회사는 현재 11대의 전기차를 보유하고 있다. 10㎞ 떨어진 지사 건물 이동수단으로 전기차를 사용한다. 티에리 다젤 슈나이더 일렉트릭 본부장은 “버스 두 대를 운영한 직전과 비교해 차량 유지비가 연간 10만유로에서 2만5000유로로 줄었다”며 “이씨그리드 프로젝트에서 상업화 가능성이 높은 아이템 가운데 하나로 전기차를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상황을 고려하면 성공 가능성은 높다는 평가다. 2016년 프랑스 전력 가격 자유화 시행과 더불어 신재생 발전 비용 하락, 전기차 시장 개화 등 긍정적으로 작용할 호재가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파악한 일반 주택 에너지 절감율만 해도 최대 20%를 넘어섰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