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TV전쟁 본격 점화
이달 초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 2014’에 참가한 TV업체 부스에서는 하나같이 ‘초고화질(UHD)’ 또는 ‘4K’ 단어를 확인할 수 있다. 모두 풀HD TV보다 4배 뛰어난 해상도의 초고화질 TV를 의미한다. 삼성전자·LG전자 등 국내 업계는 물론이고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업체 그리고 TCL·하이센스·창홍 등 중국 업계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UHD는 기본이 됐고 여기에 ‘곡면’ ‘가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퀀텀닷’ ‘8K’ 등 새로운 TV가 눈에 띌 정도다.
차세대 TV시장이 빠르게 열리고 있다. 지금 TV시장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평면 LCD TV에서 새로운 TV 시대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아직 명확히 어느쪽으로 갈지는 알 수 없다.
현재 단기적으로 조망 받는 분야는 ‘곡면 UHD LCD TV’다. 기존 제품과 비교해 평면을 곡면으로 오목하게 구부렸고 해상도를 풀HD에서 4배 우수한 UHD로 업그레이드한 모델이다. 이미 시장에 몇 개 기업이 제품을 출시했으며 이번 독일 IFA 전시회에서도 각국의 주요 TV업체들이 다양한 라인업을 선보였다. 삼성전자 측은 하반기 UHD TV 주문량 가운데 곡면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곡면 UHD LCD TV로만 갈지 아니면 그 다음단계로 바로 넘어설지는 지켜봐야 한다. 새로운 기술이 추가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화면이 곡면과 평면을 오가는 가변형 TV가 나왔다. 간단히 리모컨 조작으로 TV가 평면과 곡면으로 오간다. 뉴스나 예능 프로그램은 평면으로, 다큐멘터리나 영화 같은 역동적인 영상을 원할 때는 곡면으로 전환해 볼 것을 TV제작사는 제안한다.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부문 사장은 “TV가 휘어진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고 평평한 것이 좋다는 사람도 있다”며 “가변형 TV는 평면과 곡면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여기에 퀀텀닷 TV와 OLED TV도 변수다. 이들은 UHD 해상도와 함께 우수한 화질을 요구하는 고객에게 상당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 관심사는 UHD가 명확한데 바로 퀀텀닷TV로 갈지 아니면 OLED TV로 갈지다.
글로벌 1·2위 사업자인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퀀텀닷TV에 대해 명확한 방침을 밝히고 있지 않다. 양사 모두 이미 양산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이고 이 때문에 이번 IFA 2014에 전시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퀀텀닷TV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카드뮴이 함유돼 있어 환경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화질 특장점 측면에서는 OLED TV와 비교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장 먼저 국제 전시 행사에 퀀텀닷 TV를 선보였던 소니는 이 제품을 실제로 판매했지만 시장 반응이 기대 이하여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확인된다.
IFA 2014 현장을 찾은 하이센스일본의 비비엔니 리 CEO는 내년 2분기께 퀀텀닷TV 출시 계획을 밝히면서 “OLED TV가 아직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우선 퀀텀닷TV를 판매하는 것”이라며 “이후 OLED TV 가격이 내려가면 OLED TV를 주력으로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이센스는 이번 행사에서 OLED TV와 퀀텀닷 TV 모두를 공개했다. OLED TV를 공개한 곳은 많지만 퀀텀닷 TV를 선보인 곳은 하이센스와 TCL 두 곳 중국 업체뿐이다.
UHD LCD TV, 퀀텀닷 LCD TV에 비해 UHD OLED TV가 차세대 TV로의 잠재력이 크다는 평가다. 즉 현재의 기술 수준을 봤을 때 UHD OLED TV를 능가할 마땅한 제품을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반응이다. 하현회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장(사장)은 지난달 세계 최초의 UHD OLED TV 발표 자리에서 “최고의 화질과 최고의 디바이스가 만난 세계 최고의 제품”이라고 평가했다. 주목되는 것은 TV 가격이다. 아직 대중화를 하기에는 가격이 높다. 큰 폭으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판매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가능성은 충분하디. 지난해 세계 최초로 출시된 LG 55인치 곡면 OLED TV 가격은 처음 1만5000달러에 출시됐지만 1년 사이에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미 지난해 55인치 풀HD OLED TV보다 낮은 가격인 1200만원대에 선보인 65인치 UHD TV도 빠르게 하락할 가능성은 크다. 가격에 가장 민감한 UHD OLED 패널 생산수율이 과거 풀HD OLED 패널 생산 경험을 바탕으로 빠르게 개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OLED TV로 간다는 확신도 없다. 시장이 열리기 위해서는 개척자가 많아야 한다. 현재 OLED TV시장은 LG전자 단독으로 뚫고 있다. 마케팅 등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다. 올 하반기 월간 OLED TV 출하량이 지난해 연간치를 넘어서는 등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가격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LG전자는 OLED TV의 글로벌 판매대수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국내에서는 최근 월 기준 1000대를 넘어섰으며 연내 1만대를 웃돌 것으로 전망한다.
시장조사업체인 디스플레이서치는 올해 OLED TV 시장규모가 10만대에 그치지만 내년에는 100만대로 10배 가량 확대할 것으로 전망했다.
퀀텀닷과 OLED가 패널에서의 특징이라면 해상도에서 현재 일반적인 UHD로 불리는 4K(3480×2160)보다 4배 더 선명한 8K(7680×4320) UHD TV로 갈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LG전자는 이번 IFA 전시회에서 98인치 8K UHD TV를 나란히 전시했다. 하지만 회의적인 분석도 들린다. 콘텐츠 부족 문제뿐만 아니라 사람의 눈으로 8K UHD TV의 깨끗한 화질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양사도 첫 전시모델로 98인치를 택했다. 하지만 화면의 특정 부문 확대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한다면 8K UHD TV와 같은 더 좋은 해상도를 찾는 고객이 많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TV업계의 관계자는 “소비자는 언제나 더 좋은 화질을 갈구한다”며 “가격 부담만 줄어든다면 소비자는 당연히 더 좋은 화질의 TV를 고를 것”이라고 말했다.
평판TV 시장 규모(단위:천대)
※자료:디스플레이서치(수량기준)
◆왜 TV업계는 차세대 TV에 사활을 거나
글로벌 TV시장은 확실히 정체기다. 시장조사업체인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글로벌 TV시장은 2011년을 정점으로 내리막을 걸어왔다. 2011년 2억5534만대의 출하량을 기록한 후 2012년 2억3832만대, 지난해는 2억2560만대까지 하락했다. 다만 올해는 3년 만에 증가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 이는 4년에 한 번 찾아온다는 TV 업계 최대 특수인 ‘월드컵’ 여파 때문이다. 올림픽을 포함 다른 스포츠 이벤트는 TV시장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현재의 시장 구도에서는 2018년까지 다시 정체기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이 같은 정체기를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 결과물들이 3D TV며 스마트 TV였다. 그러나 시장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3D TV는 ‘안경’에 대한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소비자는 소파에 몸을 편하게 기대고 TV를 보는 ‘린백(Lean-Back)’을 원한다. 누워서 보는 때를 포함해서다. 하지만 안경은 그게 힘들다. 바른 자세로 TV를 봐야 하는데 시청자는 그것을 원치 않는다. 지금 한창 개발 중인 무안경 3D TV가 시장에서 수용할 수 있는 가격대에 나와야만 시장이 열릴 것이란 전망이다. 스마트 TV 역시 마찬가지다. 잠재력은 충분했지만 아직 소비자에게 흡족할만한 매력 포인트로 다가서질 못했다. 한때 인터넷 서핑을 비롯해 인터랙티브한 기능이 호기심을 끌었지만 거기에 그칠 뿐 대부분이 TV 본연의 기능만 이용한다. 소비자를 끌어들일 확실한 ‘킬러 애플리케이션(앱)’이 나오지 않는 이상 스마트TV 확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들 기능은 이미 출시되고 있는 대부분의 TV에 기본으로 장착되고 있다. 새롭게 TV를 구매해야 한다는 구매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결국 TV업계는 다시 차세대 TV의 대안으로 화질·몰입감을 찾고 있다. 4K·8K UHD와 OLED 그리고 곡면·가변형 등으로 더 우수한 화질과 몰입감을 제공해 잠재 소비자가 움직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TV업계의 한 관계자는 “UHD나 OLED TV의 장점은 TV 본연의 목적은 살리면서 시청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며 “이 때문에 잠재 소비자의 구매욕으로 충분히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차세대 TV 선도 ‘중국’
TV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는 당초 지난해와 올해 UHD TV시장 규모로 각각 93만대와 390만대로 예측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이 수치를 각각 195만대와 1370만대로 수정했다. UHD TV시장이 예상과 달리 빠르게 열렸기 때문이다. 당초 업계에서는 UHD TV와 OLED TV시장이 비슷하게 성장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모 TV업계 임원은 “UHD와 OLED TV는 각각 나름의 장점이 있다”며 “두 시장은 함께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결과적으로 이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UHD TV 시장은 급성장한 반면에 OLED TV는 여전히 정체기에 머물러 있다.
원인으로 중국을 꼽는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우리 기업과 비교해 한참 뒤처졌을 것으로 봤던 중국 TV업계는 지난해와 올해 빠르게 성장했다. 지난해까지 국내 TV전문가들은 중국 업계와 2년 정도 기술적 격차가 존재한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다르다. 최근 열린 독일 가전전시회인 ‘IFA 2014’에서 중국 업체 TV를 본 모 TV업체 임원은 “기술적으로 많이 따라온 게 사실”이라며 “이제 격차를 1년 이상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TV업체 임원도 “IFA에 새로운 TV를 내놓을 수 없다. 그러면 내년 초 열리는 미국 CES에 똑같은 TV를 중국업체가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CES와 IFA는 대략 4개월의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회로처리기술 등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지만 핵심 기술은 많이 쫓아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이렇게 급성장한 중국 기업이 UHD TV시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스카이워스·창홍·하이센스·TCL 등 중국 대표 TV업계는 UHD TV가 기존 풀HD TV보다 4배 더 우수한 화질을 제공한다는 마케팅 포인트로 공격적으로 시장을 개척했고 그것이 시장 성장세와 맞물려 판매 확대로 이어졌다. 한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지역별 UHD TV 출하 추이를 보면 중국이 무려 84%를 차지했다. 지난해 판매된 UHD TV 10대 가운데 8대 이상이 중국에서 팔린 셈이다. 세계 TV시장의 바로미터인 북미가 5%에 그친 반면에 프리미엄 TV로 가격도 높은 UHD TV가 중국에서 크게 시장이 열린 것이다. 우리 기업이나 일본·미국 기업들은 높은 가격으로 조심스럽게 시장을 타진하는 반면에 중국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뛰어들어든 결과다. 이를 반영해 지난해 갑작스럽게 UHD TV 시장이 커진 2분기와 3분기에는 중국의 스카이워스, 하이센스, TCL 등의 점유율이 각각 10% 안팎에 달했다. 국내 모 TV업체 임원은 “중국 업체뿐만 아니라 일본 업체의 부상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며 “함께 차세대 시장을 만들어가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