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2주년 특집2-새로운 기회, 창조]국내 소재산업 꽃피우려면…`인내`를 배워라

우리나라는 반도체·디스플레이·스마트폰 산업의 발전으로 후방산업 역시 지난 몇 년 간 고속성장을 거뒀다. 하지만 전후방산업이 빛을 본 시기에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소재산업’이다.

한국이 빠른 속도를 요하는 전자산업에서는 유럽·일본·미국 등 선진국을 따돌렸지만 가장 기초가 되는 소재산업에서는 예외다. 해외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는 소재산업은 많게는 이익률 30~40%에 이르는 고수익 사업. 이들 중 상당수는 대체 불가능한 독점적 지위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소재산업에 주목하고 있으나 그 근간에 자리한 인내의 시간은 무시하고 단기 성과에만 매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재산업이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와 대기업들의 시장 진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으로 남아 있는 이유다.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하반기 중점 산업 정책으로 ‘창조경제 산업엔진 프로젝트’와 ‘제조업 혁신 3.0 전략’을 꼽고 세부 추진계획을 밝혔다. 산업부는 주력산업의 핵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핵심 소재부품 경쟁력을 강화하겠다고 했으며, 이를 위해 오는 2019년까지 10대 핵심 소재를 조기 개발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대기업도 소재산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은 차세대 먹거리 중 하나로 소재산업을 지목하고 굵직한 인수합병(M&A)을 성사시켰다. 각 사업 간 시너지를 노리고 전자소재연구소도 열었다.

그러나 국내 소재산업의 가능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이도 많다. 삼성의 전자소재연구소는 제대로 출발도 해보지 못한 채 여전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도 단기 성과에 매달리다 보니 소재산업과는 괴리가 크다.

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해외 소재기업들은 하나같이 ‘인내’를 배우라고 조언한다. 또 소재 기술은 순수과학 연구에 준할 만큼 오랜 기간 연구와 상용화를 위한 테스트 과정이 필요한 만큼 막대한 연구 지원도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벨기에의 국민기업으로 불리는 솔베이는 기초과학 연구 지원으로 유명하다. 150년 역사를 자랑하는 솔베이는 기술만큼이나 자랑스럽게 여기는 행사가 있다. 바로 솔베이 콘퍼런스. 1911년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기업이 주최하는 콘퍼런스로는 생소하게 순수과학 행사로 자리잡았다. 지금도 벨기에에서 열리는 이 행사에 전 세계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이 참가한다. 과거 솔베이 콘퍼런스 사진을 보면 퀴리부인, 아인슈타인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과학자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솔베이 관계자는 “순수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회사 내에서도 순수과학만 공부하는 엔지니어가 많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도레이케미칼이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소재산업 발전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경영진의 답도 마찬가지였다. 이영관 도레이케미칼 회장은 “소재산업은 빨리 여물지 않는다”며 “우리가 고도성장을 위해 조립산업부터 출발하다보니 빨리 투자하고 빨리 이익을 내는 것이 당연시돼 있으나 소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기다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